빨대로 파리의 즙액을 빨아먹는 개미
빨대로 파리의 즙액을 빨아먹는 개미
  • 오태광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12.02.22 2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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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오태광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들판을 거닐다 보면 거미줄에서 호시탐탐 벌레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거미를 종종 봅니다. 파리라도 한 마리 날아와 거미줄에 걸리면 거미는 재빨리 내려와 거미줄로 똘똘 말아버립니다.

그런데 거미는 잡은 파리를 어떻게 먹을까요? 파리가 죽으면 조금씩 씹어 먹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미줄의 밑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면 파리나 곤충의 껍질이 버려져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거미가 씹어서 먹는다면 이런 곤충 껍질이 남아 있을 리가 없지요.

그렇다면 거미는 먹이를 어떻게 먹는 것일까요?

파리를 잡아서 거미줄로 똘똘 말아놓은 거미는 자기 뱃속에 있는 미생물을 집어 넣어서 접종시킵니다. 그러면 미생물은 껍질만 남기고 파리를 모두 분해하여 액체로 만들어버립니다. 거미는 빨대를 넣어서 충분히 분해된 즙액을 빨아먹은 다음 거미줄을 회수하고 먹을 수 없는 곤충 껍질은 그냥 버리게 됩니다.

이는 사람이 밥을 먹으면 이빨로 씹어서 음식물을 잘게 부순 후 위와 장에 있는 소화효소로 분해하여 분해된 영양분만을 창자에서 흡수하여 먹는 것과 비슷합니다. 거미가 뱃속에 키우고 있다가 사용하는 미생물은 결국 사람의 이빨이고 소화효소인 셈이지요.

사람들도 거미와 비슷하게 식품에 물리적 힘을 가하여 완전히 즙액을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 흑염소 고기를 녹여 즙액으로 만든 후 비닐로 만든 한약 봉투에 넣고 빨대로 빨아 먹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높은 온도와 압력을 사용하는 데 비해 신기하게도 거미는 단지 일상 온도에서 미생물을 이용합니다. 온도와 압력이 가해지면 영양 성분이 변성하여 손실이 생기지만 거미는 미생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영양 손실도 아주 적습니다. 또한, 사람은 즙액을 먹은 후에 한약 봉투를 버리는데 거미는 거미줄을 회수하여 다시 사용합니다.

거미의 뱃속 미생물에 관심을 가진 우리나라 과학자가 세계 최초로 유용한 미생물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무당거미의 뱃속에 사는 미생물을 단백질이 포함된 배지에 키우면 강력한 분해력을 나타내서 투명 환을 만듭니다. 거미의 뱃속에서 분리한 미생물에는 거미를 뜻하는 아라니콜라 프로테오리티쿠스(Aranicola proteolyticus)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렇다면 거미만 미생물을 이용해서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걸까요? 하수도 흙 속이나 썩어가는 짚더미 속에서는 지렁이를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요, 이 지렁이도 자기 뱃속에 미생물을 키워서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셀룰라아제(Cellulase) 분해효소로 짚과 같은 식물을 분해하여 영양원으로 사용합니다. 지렁이는 뱃속 미생물의 분해 작용으로 영양분을 얻고 이용하지 못한 흙을 분변토로 배출해 냅니다. 분변토는 농촌에서 만든 퇴비보다 더 완벽하게 분해되어서 아주 좋은 식물의 비료로 사용됩니다.

현재 거미 뱃속의 미생물은 동물의 사료 첨가제, 화장품, 피혁 산업 등에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거미가 거미줄에 걸린 곤충 먹이를 분해하여 먹듯이 가축 사료에 거미 미생물이 만든 효소를 넣어주면 사료를 분해하여 소화율을 획기적으로 올려줍니다. 사람은 음식물을 익혀서 먹기 때문에 비교적 소화율이 높습니다. 하지만 가축에게는 익히지 않은 생사료를 먹이기 때문에 소화율이 낮고, 소화되지 않은 사료는 그대로 배출되어 심각한 환경오염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합니다. 결국, 많은 우유와 고기 및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서 과잉의 사료를 주고, 그 결과 환경오염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거미 미생물의 효소는 익히지 않은 사료를 분해하여 동물이 이용하기 쉽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사료를 과잉으로 먹일 필요도 줄어들고 환경오염원의 배출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많은 양의 사료를 먹이지 않더라도 우유와 고기, 달걀을 생산할 수 있어서 훨씬 경제적입니다. 이처럼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고 곰곰이 조사하면 거미 뱃속에 사는 미생물과 같이 우리에게 아주 유익한 자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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