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저녁초대
친구의 저녁초대
  • 이효순 <수필가·청주덕성유치원 원장>
  • 승인 2012.02.1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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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덕성유치원 원장>

퇴근 무렵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시간 있으면 자기 집에 가서 저녁 먹고 가라는 정이 담긴 목소리였다.

우린 초등학교 동기동창으로 많은 세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사는 현직에 있는 친구들이다. 지난번에 분갈이하여 심은 홍휘 화분을 챙겨서 그 친구를 따라 도착한 곳, 넓은 아파트 공간이 시원하게 눈으로 들어왔다.

흰 애완견이 몇 번 짖더니 꼬리를 흔들며 내 무릎에 와서 앉는다.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아 어색했지만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연스럽게 안아 주었다.

안목 있게 배치된 가구들과 소품들이 화가의 집답게 세련되어 있었고 몇 년 전에 전시회 축하로 보낸 나도 풍란의 꽃대가 두 대나 올라와 있었다.

친구가 손수 지어준 저녁을 먹으며 오랜만의 행복에 젖었다. 우리나이 또래는 모두 헌신만하고 자식이 결혼해도 식사 한 끼를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이고 보니 이런 시간들이 한없이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식탁은 채식 위주의 상큼한 식단으로 차려졌다.

청국장과 함께 먹는 저녁, 이야기꽃을 피우며 넷은 소녀시절로 돌아갔다. 친구 신랑은 아직 학교에서 퇴근전이라 우린 부담 없이 여름 방학 때 여행할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언제 부터인가 우리의 미풍양속인 나눔의 문화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초대를 해도 모두 음식점 일색이다. 바쁜 현대 생활에 얽매어 정이 담긴 소통의 관계가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나는 우리 집으로 손님들을 초대한 것이 언제였는지, 아마 이십년도 넘은 것 같다. 그렇게 건조하게 살아왔다. 이에 비하면 오늘 같은 저녁 초대는 얼마나 값진 것인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는 집안에 새사람이 시집오거나 친척들이 출가한 후 고향에 왔을 때는 반드시 특별한 반찬은 아니지만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나누던 기억이 생생하다.

반찬은 푸성귀에 조금 더해서 동태찌개, 콩자반 정도였다. 그 때마다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서 다 타고난 불씨에 김을 굽는 일을 도왔다. 새까만 석쇠에 들기름을 발라 굽는 김은 요리중의 요리였다.

그렇게 사람들을 불러 사람 사는 정을 음식으로 나누셨다. 그런 어머니의 정을 보고 자란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친척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고 나도 세상의 각박한 삶에 보이지 않게 젖어 살아온 것 같다.

올케는 형제들이 많은 집안에서 자라 가끔 우리 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음식을 먹으며 정을 나눈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그동안 스무 살에 집을 떠나 객지로 직장 따라 다니며 무엇을 남겼는지….

자식 뒷바라지에 공부시킨 것, 그리고 어머니 모시고 여섯 식구 살아온 것 뿐이다. 동기간 간의 우애도,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그렇게 끔찍하게 나누시던 정도 뒤로 하고 삭막하게 살아왔다. 늦었지만 삭막한 마음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넣고 싶다.

친구의 아파트 문을 나와 깜깜한 하늘을 바라보니 별이 떠서 깜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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