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龍) 이야기
용(龍) 이야기
  • 허세강 <수필가>
  • 승인 2012.01.2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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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허세강 <수필가>

아침식사를 하며 딸아이가 꿈 이야기를 했다. 이틀 동안 연이어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간밤엔 너무 무서워 울었다고 했다. 그제 밤에는 커다란 두꺼비가 오른쪽 발목에 붙어 있어 떼어 놓으려 발을 흔들다 잠을 깼고 엊저녁에는 그 두꺼비가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울면서 큰소리를 치다가 잠을 깼다고 했다.

딸아이의 꿈 이야기를 듣자 올 임진년 새해에는 우리 집에 분명 대박이 터질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꺼비는 행운과 복을 상징하는데 예삿꿈이 아니라 생각하고 기가 흩어지기 전에 우선 로또복권부터 사야겠다고 호들갑을 떨며 서둘러 옷을 챙기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대전에 사는 둘째 아들의 전화였다. "아버지! 기뻐하십시오." 마치 8·15 광복을 맞은 듯한 감격과 환희에 찬 목소리였다. "아버지! 꼭 60년 만에 아버지를 이를 또 다른 흑용이 우리 집에 들어오게 됐어요. 정훈이가 아기를 가졌어요."라며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 딸아이의 그것이 태몽이었단 말인가? 3년 전 큰 며느리의 임신 소식도 오늘 아침처럼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하다가 아들의 전화를 받고 알게 됐다. 그때는 커다란 구렁이가 자기 다리를 칭칭 감고 있어 기겁하고 놀라 깼다는 내용이었다.

어찌 됐든 우리 집 복덩이 딸아이의 꿈은 참으로 신통하다. 1년 내내 제대로 된 꿈 한번 꾸어 보지 못하는 나로서는 부럽기도 했다. 로또 1등이 아니라 좀 서운했지만, 집안의 경사임은 분명했다.

나의 평생 사주록 올해의 운세에는 청룡포손 자손유경(靑龍抱孫 子孫有慶)이라 되어 있는데 비슷하게 맞아 들어가는 것 같고 앞으로 신수대길(身手大吉)할 것 같아 기쁘다.

임진년은 용의 해인데 용은 12간지의 동물 중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상상의 동물이다. 옛날 어느 황제가 민정시찰을 하면서 자신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뿔은 사슴, 머리는 소, 몸통은 뱀, 발은 독수리를 형상화한 것이 기원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용은 최상의 권위를 나타낸다. 황제의 자리는 용상이고, 입신출세하는 어려운 관문을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한다.

청룡과 황룡이란 말은 자주 들어 봤는데 흑용은 올해 들어 처음 듣는다. 그런 것이 있기는 한지. 2012년은 60년 만에 찾아온 흑용의 해라고 한다.

나는 1952년 임진생이기 때문에 흑용으로 태어나 60년을 흑용으로 살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나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 본다. 한평생 나는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살아 왔는가? 오직 내 몸뚱이 하나를 챙기고 건사하기 위해 애썼을 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나, 나를 있게 해준 사회를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 부끄럽기 그지없다.

아들의 전화를 받고 가슴에 십자 성호를 그리며 나의 뒤를 이을 손자 '해별이'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봤다. 그리고 새로 태어날 손자는 나처럼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닌 이 세상을 위해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임진년 흑용의 해, 여섯 분 신위께 공손히 절을 올리며 새해 첫 선물로 둘째 손자 해별이를 점지해 주신 조상님께 한없는 감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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