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16>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16>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3.3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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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지
달구지는 소나 말에 의해서 짐을 옮기는 기구로 순 우리말은 ‘달구지’이지만, 소가 끌면 우차(牛車), 말이 끌면 마차(馬車)라 불렀다.

우리나라 달구지는 바퀴가 두개인 것과 네개인 것등 두종류가 있다.

두바퀴는 북한 등 산간지역에서 사용했으며, 네바퀴는 중부지방 이남 평야지대에서 사용해왔다.

두바퀴의 달구지는 첫대를 길게하여 소등에 걸고 첫대가 소등에서 벗어나지 않게 양쪽으로 끈을 달아 소의 목밑으로 걸었다.

농촌에 처음 들어온 달구지는 앞바퀴가 작고 뒷바퀴가 큰 네바퀴 달구지가 보급되고 서울, 인천, 부산등지는 두바퀴 달구지가 이용됐다.

사람이 ‘지게’에 짐을 져서 운반하고 소등에 ‘길마’를 지워서 운반하던 물량은 한정돼 있었으나 신작로가 닦이고 길이 넓혀지면서 달구지가 등장했다.

달구지는 주로 소를 이용해 끄는 운반도구로 힘좋은 황소는 쌀 30가마를 실을 수 있었으니 사람의 30배 큰물량 수송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골길이 넓혀지고 달구지 보급이 많아지면서 농촌경제에 새바람이 불었다. 운반도 용이하게 했지만 달구지를 이용해 돈도 벌었다.

볏단을 싣고, 쌀가마를 나르고, 나뭇짐을 싣거나 밭에 두엄을 내거나, 이삿짐을 먼곳까지 운반하는데 달구지가 큰일을 해냈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 도시에서는 두바퀴 달구지가 각종 짐을 나르고 사람의 등짐으로만 옮기던 운송에 큰 혁명을 일으켰다. 더구나 도시는 말이 끄는 달구지가 생기면서 짐도 많이 싣고 빨리 달리는 말마차가 더 인기였다.

그러다가 나무바퀴에 쇠를 씌워 무겁기만 하던 달구지, 자동차 문화가 들어오면서 고무타이어 바퀴로 바뀌어 달구지를 끄는 소나 말도 힘이 덜들고 자갈길이 아스팔트길로 바뀌어 달구지 운송수단이 좋아졌지만 ‘리어카’가 들어오고 ‘경운기’가 등장하면서 달구지는 새로운 문명에 쫓겨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어렸을 때 시골 대장간에서 나무로 제작된 달구지 바퀴에 볏짚을 태워 벌겋게 달군 쇠를 씌우던 모습은 또 하나의 수레바퀴 문화로 남게 되었다.

그세대의 달구지는 참나무, 아카시아 등 무거운 재질이라 달구지 자체의 무게도 컸고, 소가 끄는 네바퀴 달구지는 아주 느린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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