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23>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23>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3.3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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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조리
복조리 사세요,복조리, 신년운수 대통하는 복조리 사세요.”

지난 70년대까지만 해도 해마다 새해 첫날 복조리를 팔러다니는 복조리 장수의 힘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복조리 장사꾼이 마을로 들어오면 이집 저집 복조리를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로워 지기를 소망한다.그런 심리를 이용하여 복조리 장수가 생겨났고, 새해 해뜨기전 복조리를 사면 복받을 것을 기대하여 일찍 복조리 장수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복을 받는다는 ‘조리’가 많이 팔리기도 했고 조리장수는 목청 높여 “복조리 사세요”를 외쳤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덕담을 좋아해서 새해가 되면 세배를 다니며 덕담을 주고 받고 ,길에서 만나면 “복많이 받으세요”하며 서로 인사를 나눴다.

복조리란 무엇인가.

산죽(山竹, 졸대)이 없는 북쪽지방은 싸리나뭇가지를 쪼개어 만들기도 하지만 주로 조릿대(가는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 얼기설기 엮어 국을 뜨는 국자처럼 만드는 ‘조리’는 쌀을 씻어 잡돌을 골라내는데 쓰이는 도구로 집집마다 부엌에 매달아 두고 사용해 왔다.

지금처럼 농기구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탈곡을 훍마당에서 했기 때문에 모래와 흙 같은 것이 섞이기 일쑤였다. 따라서 돌을 골라내기 위해 쌀을 물에 넣고 조리로 일렁일렁 일면 무게가 가벼운 쌀은 조리속에 담기고 무게가 무거운 돌은 가라앉아 골라 낼수 있었던 것이다.

조리를 만드는 방법은 굵은 대나무를 잘게 쪼개 조리를 엮기도 하지만 복조리로 꼽히는 것은 굵기가 가는 산죽으로 만든 것을 제일로 여겼다.

산죽은 늘 푸르기도 하지만 햇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복(福)이 더 드는 것으로 여겨 옛날에는 궁중에서 특별히 제작하여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고 한다.

복조리는 한쌍을 사서 출입문 안쪽에 매달고 쌀과 돈을 넣어두면 그해의 복이 복조리안으로 들어와 부자가 된다는 풍속이 전해지면서 복조리가 많이 팔리게 된것이다.

그래서 조리는 쌀을 씻어서 ‘건지는 것’이 아니라 쌀조리로 쌀을 ‘인다’, 즉 ‘일어난다’ ‘일으킨다’ 쌀을 불리어 늘린다’는 의미로 쓰여 오면서 조리를 복을 주는 생활도구로 여겨진 것이다.

쌀을 불리고 재산을 모아 부자를 만드는 복조리를 부자든 가난한 집이든 출입문 안쪽에 매달아 두던 풍속은 소박하고 아름다움이 있어 좋았다. 보통 가정에서 사용하는 조리는 손잡이가 짧고 가벼운 것이 특징인데 복조리는 크고 손잡이가 길어서 벽에 매달아 두기가 편하게 만들어졌다

“복조리 사세요.”하고 거리마다 집집마다 외치고 다니던 복조리 장사꾼들의 목소리가 아련하다.

‘애고 남산밑에 조리장사/작년에 왔던 조리장사/명년 초하룻날 오신다더니/우째 아니 오시는가/나를 아주 잊었는가’

혼자된 과부가 조리장수와 눈이 맞아 애타게 기다리는 ‘조리장사 노래’가 보은지방에 내려오고 있다.

몇년전만 해도 속리산 주변 구병리 주민들은 겨울농한기 졸대의 새순을 베어다가 복조리를 엮어 농가소득을 올렸었는데 지금은 조리의 쓰임이 줄어들고 복조리 소비가 줄어 중단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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