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31>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31>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3.3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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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모자
한국인의 멋으로 꼽히는 ’갓’이 세월의 변천에 따라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다.

세계 여러나라 여러 계층의 민족들이 저마다 독창적인 모자를 쓰는데 우리나라의 갓처럼 정교하고 멋을 나타내는 모자가 또 있을까 싶다.

갓의 모습을 찬찬히 분석해 보면 그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갓 하나를 만들기 위해 장인들의 수고로움은 임금의 왕관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정성과 공이 들어 간다.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우리나라 남자들은 지체가 높거나 서민들까지 모자를 쓰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모자 중에 값진 것은 ‘갓’인데 갓은 모양에 따라 색깔이 다르고 쓰는 방법이 또한 달랐다.

갓은 조선시대 사대부의 대표적인 관모(冠帽) 가운데 하나였다.

원래는 햇빛, 비, 바람을 가리기 위한 실용적인 쓰개였으나 재료, 형태,제작방법이 다양하게 변하면서 사회적 신분 등을 반영하는 관모가 탄생됐다.

우리나라의 갓은 형태상으로 볼 때 모자와 양태의 구별이 어려운 방갓형(방립형:方笠型)과 구별이 뚜렷한 패랭이형(평량자형:平凉子型)의 두유형이 있다.

방갓형에는 삿갓, 방갓, 전모등이 있으며 패랭이형에는 패랭이, 초립,흑립, 전립, 죽립, 백립등이 있다.

여러형태의 갓중에 대표되는 것은 흑립(검정갓)이다.

갓은 상투를 튼 머리에 망건과 탕건을 쓰고 그위에 쓰게 되어있다.

우리나라에서 갓을 언제부터 썼는지 정확히는 알수 없고 ‘삼국유사’나 고분벽화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사용했음을 알수 있다.

우리민족의 생활필수품으로 여겼던 갓은 대한제국말 개국정책으로 이뤄진 ‘단발령’을 계기로 차츰 사라져 갔다.

현재는 경상도 지방의 일부 노인들과 유림행사에 등장하고 TV역사 드라마에서나 볼수 있을 뿐이다.

우리의 갓은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전국 어디에서나 제작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가운데 광복후까지 갓을 만들던 곳은 통영, 예천, 대구, 김천, 김제,남원, 제주 등지였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통영갓으로는 정춘모씨(鄭春模), 제주도의 김인씨(金仁)가 갓만드는 인간문화재로 지정되고, 예천 갓으로는 박창영씨(朴昌榮)가 기능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교하게 만든 갓은 여러사람의 손길에 의해서 완성된다.

갓을 만드는데는 갓을 겯는 사람 세사람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

첫째가 총모장이고 양태를 겯는 양태장, 갓을 모으는 갓장이가 10여일동안 한개의 갓을 만들수 있다고 한다.

양반은 갓을 쓰고 남자스님은 대나무 등립을, 여승은 소나무 겨우살이로 만든 영송낙, 벙거지는 병졸들, 초립은 젊은이나 별감 광대들이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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