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맛
시골 맛
  • 이영창(수필가)
  • 승인 2011.11.2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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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옛날 어느 고을에 한 부자는 부러울 것 없는 세상을 살아왔다. 하나, 나이가 들고 보니 살아온 지난날이 헛되었다. 하여, 이제 벼슬이나 한자리 얻어 볼 요량으로 땅 몇 마지기 판 돈을 짊어지고 한양으로 올라갔다. 수소문 끝에 세도 높은 대감 집을 찾았다. 며칠을 과객으로 그 집에 묵으며 눈치를 살피던 중 드디어 기거하던 행랑채를 지나는 대감을 만났다. 그는 얼른 돈 보따리를 건네며 “대감님! 염치없지만 어디 군수 자리 하나 나거든 소생에게 주십시오.”, “알았네, 소식을 줄 것이니 내려가 있게나.” 그제서야 이제 됐다 싶어 시골에 내려가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감투소식이 없었다.

‘아하, 돈이 적어서 그런가 보구나’ 하고 시골부자는 가진 땅, 절반 판돈 한 가마니를 싣고 다시 대감 집을 찾아갔다. “나으리, 이번에는 어떻게 좀 한자리 해주십시오.”, “아, 걱정 말게, 곧 소식이 갈 터이니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게나.” 대답은 시원스럽게 들었으나 집에 와 아무리 기다려도 역시 감감 무소식이었다.

‘에이, 이번에는 있는 땅을 모두 팔아 갖다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시골부자는 땅을 몽땅 팔아서 돈을 한 수레 싣고 올라갔다. “대감님! 이러다 늙어 죽겠습니다. 죽기 전에 제발 감투 한번 쓰게 해주십시오.” , “그렇지 지난번엔 어찌 마음대로 안 되었지만 이번에는 꼭 될 걸세. 염려 말고 내려가 있게나.” 그런데 도대체 소식이 없었다. 몇 년을 기다리다 보니 부아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갖다 주는 돈은 덥석덥석 받아 넣고 시골뜨기라 괄시하는구나 싶었다. ‘대감이고, 땡감이고, 내게도 생각이 있지.’ 시골부자는 집에서 키운 박 중에서 제일 큰놈을 하나 골라 커다랗게 뒤웅박을 팠다. 그러고 나서 뒤웅박을 가지고 뒷산에 올라 땅벌 집을 찾아갔다.

“아, 그냥 오지 또 뭘 이렇게 짊어지고 왔는가?”, “뭐 대수로운 건 아닙니다만 시골에서 살다 보면 가끔 귀한 약이 생기지요. 이건 참 희귀한 보약이 돼 놔서 가릴 것이 많습니다. 밤에 혼자 드시되 반드시 좌우를 물리시고 문단속 잘 하신 연후에 옷을 다 벗고 나서 드셔야 효험이 나지 그렇지 않으면 약발이 안 받습니다.”

그날 밤 대감은 일찍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옷을 홀라당 벗은 다음, 비단 보따리를 풀어 보았다. 그리고 뒤웅박 아가리를 쑥 잡아 빼는 순간, 열을 받을 대로 받은 땅벌들이 나와 마구 쏘아 대니 배길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대감은 온 방을 떼굴떼굴 구르며 ‘아이고 나 죽는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아버님, 왜 그러십니까?”하고 아들이 문을 열려고 하나 안으로 잠겨 있어서 열릴 리 없다. 안에서는 문을 열려고 해도 눈을 못 뜨니 열 수가 없었다.

문을 뜯고 아들이 방에 들어가 보니, 대감은 알몸인 상태에 온몸이 퉁퉁 부어 있고 배는 된장독만 해 있었다. 얼굴도 어디가 눈이고 입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대감은 옆에 있는 시골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연신 낑낑거렸다. 그때 시골부자가 “아이고, 대감어른! 고맙습니다요. 어제 발작을 하시기 전에 저더러 ‘내일 날이 새자마자 군수 한자리 줘 보내겠네’ 하시더니 병석에서도 그 약속 잊지 않으셨군요”하며 방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아들은 그 자리에서 시골부자에게 문서를 만들어 주었다. 마침내 바라던 군수 한자리 얻어, 득의양양 고향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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