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하지 말자
일희일비하지 말자
  • 정규영 <중앙동>
  • 승인 2011.11.1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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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자주 아들과 언쟁을 벌인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의 대화 속에 화를 억누르는 나를 본다. 또 무엇이 억울한지, 아님 분을 삭이는지 모를, 눈물을 흘리는 아들을 본다. 요즘은 속도를 중시하는 시대라 그런지, TV프로그램도 보는 이로 하여금 웃든지 울든지 하라고 일희일비를 강요한다.

그래서 예전에 비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스마트폰임에도 불구하고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소비자의 기호에 부응코자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아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에 빠르게 부응하지 못하는 것 같은 구세대인 엄마의 느리기만 한 대응 속도에 화가 난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에 비해 무턱대고 빠르기만 한 아들의 질주본능에 나 또한 화가 난 것이다. 느린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네가 느림의 미학을 아느냐고. 언제 올지 모르는 답장을 기다리는 설렘을 느껴 봤냐고. 아들에게 목청껏 쏘아붙이고 싶었다. 느린 것이 결코 불편한 것만은 아님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 이런 과정 속에서 아들의 행동에 일희일비 빠르게 반응하는 ‘나’가 보인다. 자식의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부모로서의 나를 보곤 쓴웃음이 지어진다. 누가 그러던가. 부모는 등대와도 같아야 한다고 말이다. 거친 풍랑 속에선 변함없이 바닷길을 밝게 비춰주고 잔잔한 바다에서는 안녕을 기원하며 묵묵히 바닷길을 인도하는 빛줄기 말이다. 몇 번이고 등대의 삶을 되새겼으면서도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의 잦은 마찰이 아프고 서운하다. 아직도 나는 멀었나 보다.

나이만 먹었지 아들과의 기 싸움에 똑같이 대응하는 수준이 말해 준다. 등교해서 빈 아들의 방에서 어릴 적, 백일, 돌사진을 보니 또 배시시 웃음이 난다 ‘어허, 일희일비 말자 해 놓고선….’

정말 나는 멀었다. 아니다.

자식의 이쁜 짓에도 웃고, 미운 짓에도 슬퍼 말고 웃자. 그럼 된 것 아닌 가. 일희일비 아니잖은가. 일희일희다. 정답이 없는 인생사에선 웃는 것이 답이 될는지 말이다.

빈방에서 사진을 보는 나를 보시곤 친정 엄마가 한마디 하신다. “너 나이 먹냐? 속상하다고 지나간 것 찾으면 늙었다는 거여. 아직 창창한 애가 왜 그려, 너 그맘땐 더했다. 암, 더했지. 에미가 되갖고, 자식 좋은 모습만 보며 살 수 있냐. 애 낳고 기르면서 에미도 같이 크는 거지. 13살 동갑내기끼리 오죽 허것냐. 한창 크고 싸울 나이지.”

아직도 배울 게 많은 에미 자격증 딴 지 13년차에 아직도 자식 땜에 마음 졸이시는 38년차 되신 대선배님이 조급해 말라며, 갈 길 멀다고 일침을 놓으신다.

“무던해라 일희일비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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