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펴기
주먹 펴기
  • 송순 <동화작가>
  • 승인 2011.11.0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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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첨삭하는 일을 몇 년 동안 하다 보니 나에게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그건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때 그냥 편하게 읽지 못하고 오자는 없는지, 문맥은 잘 연결되었는지를 꼼꼼히 살피며 읽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은 읽지 못하고 글자만 읽는 오류를 자주 범하곤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오랜만에 소식이 닿은 학창 시절 친구가 자신의 글이 수록된 문집 한 권을 보내온 적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친구의 글을 읽어 내려가다가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한숨을 폭하니 내쉬고 말았다.

글의 서두를 읽을 때는 친구가 요즘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어서 반가웠는데 몇 줄 더 읽다가 나는 그만 높은 장애물에 부딪치고 만 것이다.

아! 이럴 수가…….

책을 만든 편집자는 교정도 하지 않고 책을 만든 게 분명했다. 자꾸만 어긋나는 문맥이야 처음 글쓰는 친구이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여기저기 눈에 띄는 오자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기 글을 제대로 수정도 하지 않고 원고를 낸 친구에게 속상한 마음이 생기고, 편집자는 왜 이렇게 성의없이 책을 만들었을까? 하는 불만이 가슴 깊은 곳에서 꾸역꾸역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니 친구의 글이 제대로 나에게 읽힐리 만무했다. 결국 나는 친구의 마음은 읽지 못하고 글자만 읽은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친구를 직접 만났는데 글을 읽은 느낌에 대해 말할 수 없어 허둥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작은 단체에서 마련한 조촐한 음악회에 가게 되었는데 행사 진행을 나타낸 팸플릿에 실어놓은 ‘모시는 글’이 자꾸만 내 시선을 잡아당기는 거였다.

좋은 단어는 많이 모아 놓았는데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자 하는지 중심 내용이 없고 눈에 거슬리는 오자와 잘못된 띄어쓰기!

난 진짜 우습게도 예쁜 꼬마들과 어르신들, 그리고 청년들이 꾸민 멋진 무대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모시는 글’의 문장을 고치고 있었다. 그러니 정성스럽게 마련한 행사에 나는 얼마나 큰 실례를 범하고 온 건가. 집에 돌아오면서 무대에 서 있던 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려 못내 미안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이런 내가 완벽한 문장을 쓰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글에서 생기는 잘못된 문맥과 오자, 그리고 잘못된 띄어쓰기 등을 발견하지 못할 때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교정을 했으면서도 발견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활자화된 후에 발견하니 말이다. 그야말로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내 눈 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남의 잘못을 꼬집어내려 하고 평가하려고 늘 주먹을 꽉 움켜쥔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해 본다. 혹시라도 내가 그랬다면 이제부터라도 손바닥 위에 부드러운 깃털을 올려놓은 것처럼 평화롭게 손을 편 채로 살고 싶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나 자신도 가까이 느끼고 내 주변인들도 가까이 느낄 수 있으리라.

또한 내가 첨삭을 해 주지 않아도 되는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땐, 오자나 어긋난 문맥 정도는 자연스럽게 건너뛰기를 하며 글쓴이의 마음만을 읽으리란 다짐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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