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암 생태 공원도 이랬으면
문암 생태 공원도 이랬으면
  • 이진순 <수필가>
  • 승인 2011.10.1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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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여행은 즐겁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활력을 준다. 일주일 동안 문학기행과 체험행사에 참여하며 창의력과 견문을 넓혔다. 농업기술센터의 알찬 계획으로 산소 같은 교육을 통하여 메시지 전달을 받고 돌아왔다.

어렸을 때부터 꽃에 관심을 많이 가져서 원예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녔다. 국화를 삽목하여 길러 쪽빛 하늘 아래 국향을 즐기며 국화전을 가졌던 추억이 새롭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의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천리포 수목원에는 1만3,200여 종의 식물들이 살고 있었다. 외래종과 우리나라의 식물들이 어우러져 세계에서라는 단어가 무색지 않았다.

늪지에는 물을 좋아하는 연꽃이 만발하였고 장수잠자리와 나비 떼들이 잔치를 하고 있었다. 갈대가 춤추고 다섯 가지 색깔의 상사화는 요정이 되어 보는 이들에게 감탄사를 터트리게 했다.

천리포 수목원을 조성한 민병갈 원장은 미국 사람으로, 1945년 미 24군단 정보장교로 한국에 첫발을 딛고 6.25전쟁에 참가했으며, 피폐해진 충남 태안의 헐벗은 산림조성에 앞장섰다. 1962년 18만평의 부지를 매입 나무심기를 시작하였는데, 그는 300년 앞을 보고 수목원 조성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한국인보다 한국의 자연이 마음에 들어 한국인이 되었으며 수목원 안에 해송집과 측백나무, 사철나무, 벚나무집과 초가집, 배롱나무집, 위성루 등 아름다운 곳을 감상하기 위하여 집을 지어 옮겨 다니며 살았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자연을 벗 삼아 만리포 바다를 바라보며 나무와 꽃을 가꾸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

81세로 생을 마친 민병갈 원장은 미국인으로 한국의 자연을 사랑했으며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국가도 인정하여 나무 할아버지로 등재되어 있단다.

문암 생태공원 근처가 나의 집이다. 천리포 수목원을 돌아보며 문암 생태공원 가꾸기를 저렇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 왔다.

충남 태안의 수목원처럼 생태공원에 들어오는 식물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정리해 둔다면 보물 같은 기록이 될 것이다. 쓰레기더미 위에서 몸살하다 사라져간 식물들의 희생을 추억하며 살아 생존하는 식물들의 이야기야 말로 테마가 있는 공원 만들기의 산 체험담이 될 것이다.

주민들이 그동안 악취와 해충으로 농사지으며 겪었던 고생담, 저기압 권에 들면 밤잠을 설치며 뒤척인 세월이 20년이었으며 교통이 불편하여 젊은이들이 고향을 등진 사연을 아무도 모른다. 땅 지킴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노인들의 서글픈 이야기와 강서2동이 청주시에서 가장 작은 동이 될 수밖에 없었던 점이다. 희망을 기다린 세월을 시민들은 두고두고 감사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첫째, 주민들에게 주인 의식을 심어주고 둘째, 시가 함께 공원 만들기에 공과 사랑으로 만들어진 공원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훗날 관광객에게 혐오시설이라 모두가 싫다고 하는 쓰레기 더미 위에 세워진 공원은 처음 약속처럼 문화를 즐기고 공유하며 감동적인 자랑거리를 해설사를 통하여 들려 줄 때 천리마 식물원과 같이 감동의 체험장이 될 것이다.

무심천과 오창(팔결)물이 흘러 온 합수머리에는 조개와 잉어가 살고 있으며 백로 떼들이 먹이를 찾는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다. 해질녘이면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붉게 활활 타오르는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셋째, 교통이 편리하여 오고 싶을 때면 언제든 버스만 타면 올 수 있는 생태 공원이 빨리 돼야 한다. 까치가 아침마다 울지만 감감 소식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할 수 있는 문화 시설이 곳곳에 만들어져야 하지만 주민들을 외면하고 아직도 잠자고 있는 공원의 모습은 쓸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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