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갔나
어디로 갔나
  • 이영창 <수필가>
  • 승인 2011.09.2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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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내가 살아가는 데 꼬리표 같은 하나의 문제가 있다. 바로 술이다.

나도 그렇거니와 아내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다. 아내는 술을 입에도 못 대는 체질이다. 일심동체로서 바로 나로 인해 당하는 일이다. 유치한 얘기지만 금연에는 성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남들이 아무리 끊으려 노력해도 끊지 못하는 것을 한 갑 이상 피우다가 끊은 지도 삼십년이 되어가니 말이다.

그러나 차라리 끊으려면 술을 끊을 것이지 담배를 끊었다는 것이 아내의 불만이었다. 담배와 술이 건강에 치명적 손상을 준다는 건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둘 중에 하나만 꼽으라면 담배가 술보다 몸에 피해를 주기로는 담배가 하늘과 땅 사이로 크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만치 해로운 것을 오죽하면 담배는 피우고 술을 끊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까. 남편의 술 때문에 아내 마음이 얼마나 외소함으로 옴츠렸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술을 대하면 무조건 좋아만 하는 노골적인 술꾼이다.

그렇기는 하나 마음을 정해 놓고 다니는 술집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술집을 소개한다며 J시인이 나를 이끌었다. 오래된 책과 신간 문학지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는 허름한 카페였다. ‘민들레울’이란 소책자가 소개되기도 하고 주점의 이름도 그렇게 지어져 있었다.

자주 술자리에 앉게 되는 사람에게는 갈 만한 술집이었다. 첫째 술과 안주 값이 싸서 문학인들이 자주 이용하게 된 곳이다.

생각하기에 카페에서 생계가 유지될 것 같지 않았다. 우리가 찾는 것은 겨우 소주뿐, 안주로는 두부, 빈대떡, 더러는 김치를 구어 먹는 엉터리 술꾼만 자주 드나드는 곳이니 겉으로만 요란했지 실속이 없었다. 그러나 카페의 여자 주인은 우리들의 투정을 잘도 받아 주었다. 밤이 이슥하도록 문득 생각나는 것, 술 취한 생각만치 떠들어대는 우리들의 얘기를 정담으로 나누면서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조용한 목소리는 그대로 우리에겐 안주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러고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걱정을 할 때도 있지만 여인은 개량한복을 만들고 수선하는 전문인이기도 했다. 어쩌다 장사가 안 되는 날 밤이면 철따라 벚꽃이며 달맞이꽃을 보러, 시내를 벗어난 증평의 핏줄과 같은 보강천 제방을 문학인들과 함께 거닐기도 한다.

그렇게 일 년을 지나왔어도 깊이 정이 들었을 것인데, 몇 년이란 세월의 정을 쌓아두고, 가게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이 소리에 소인배 술꾼들은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한 시간은 길게도 흘렀다. 그러한 소문이 여러 날 지나매, 그동안 장사가 되지 않아서 가게가 나갈 생각을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리가 모르는 사이 어디로 갑자기 이사를 간 것이다.

들리는 말로는 그녀의 딸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딸 보호 차 우리가 사는 땅에 머물렀던 모양이었는데 그녀의 임무가 막을 내린 모양이다. 가진 것 모두 내어주고 휴지통에 버려지는 술병이 생각나고 민들레울이란 책자에서 보았던 빈병으로 돌아나는 ‘소주병’이란 시가 생각나서 더욱 생각나서 그리워지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가 떠나간 뒤에도 아직 그 카페의 상호는 남아 있고 그 사람은 어디로 갔나. 명주실에 달려 높이 날던 방패연은 어이 해서 끊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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