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지에서 만난 여인
휴가지에서 만난 여인
  • 이근형 <포도원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1.09.1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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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내가 당신의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소년시절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기구하고도 격정적인 삶을 세상에 소개했을 당시 난 그저 당신의 소개말 속에 나오는 단어들만 보고도 당신을 향한 호기심으로 가득했었지요. 아직은 인생이니 세상이니를 알지 못했던 내게 신문 광고 속에 던져진 몇 줄 당신의 삶은 내게 깊은 인생의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잊었습니다.

그 후 장년이 되고, 누군가의 삶들을 옳은 길로 인도해야 하는 목사가 되어 지난 여름 옥화리에서 당신을 만났습니다. 이구열이라는 미술학계의 어르신이 1970년대, 그의 젊은 시절에 한 번 당신을 세상에 알리고는 더 자세하게 세상에 내어 놓은 것이 당신과의 데이트를 가능하게 했지요. 혜석님, 당신이 살았던 구한말이라는 사회 속에서 선각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지난했었던지를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여성들이 어느 만큼이나 기억할까요? 당신을 버린, 그 살고 있는 시대와는 상관없이 소위 남성이라 하는 사람들은 여성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아픔을 어느 만큼이나 이해할까요?

구한말 수원에서 나씨 성을 가진 참판이라는 벼슬 집안의 딸로 태어나 일찌감치 미술이라는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아 일본 유학을 하고 한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라는 역사적 인물이 된 당신. 공부를 하는 동안 사랑의 가슴앓이를 하고 그 사랑의 죽음과 문인들과의 만남. 그 과정에서 받는 세인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당당히 예술에의 몰입과, 가부장적 남성우월의식에 여성이 억압되도록 구조화된 현실사회의 의식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당신. 그 도전으로 감행(?)한 고위 공직자와의 결혼. 일순간 행복한 듯싶었던, 그 당시 여성으로서는 한국 최초라고 하는 파리여행에서의 18개월여의 삶은 당신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 하나를 남겼지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성과의 만남은 당신의 남편도, 당신을 스타로 불러주던 그 사회도, 다정했던 지인, 심지어 친정의 가족이나 자녀들까지도 당신을 버릴 만큼 그 사회는 당신을 허용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거친 음성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부르짖어도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로부터의 소외는 당신을 거리의 낭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생명을 마치기까지의 십여년. 모성을 가진 엄마로서 자녀에 대한 갈망, 그리움이 얼마나 컸을까, 남편을 향한 애와 증, 사회에 대한 배신감, 높고 높은 사회 인식이라는 현실의 벽에 맞닥뜨린 절망감. 이 모든 감정들은 당신이 걸치고 있던 누더기만큼이나 처절하게 당신을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책의 제목으로 삼은 "에미는 선각자였느니라"라고 한, 당신의 유서가 되어버린 하소연은, 당신이 그토록 아파한 삶의 절규이자 당신의 자녀들에게, 아니 지금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진 외침으로 다가왔습니다.

나혜석님, 당신을 변호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당신과의 숲 속 데이트를 마감했습니다. 다시금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은, 기존 현실의 벽을 깨고 선각자가 되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희생을 요구하는지를 새삼 가슴속에 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가 수시로 변화하고 있는데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어느 곳에선가 많은 '나혜석'이 힘겨운 십자가의 행진을 벌여줌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을 만나는 동안 책 속에 펼쳐진 당신을 보는 것도 놀라움이었지만 수십년 세월을 가로질러 당신을 두 번째로 세상에 호명하는 이구열이라는 미술학자님의 작가로서의 열정 또한 제게는 큰 감동이었습니다.

당신의 이름 나혜석, 당신을 책으로 만나게 해 준 이구열, 그 열정의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또 하나의 열정이 끓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단, 제대로 된 길, 그 십자가의 방향으로 말입니다. 예수님의 열정을 향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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