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의 목소리
1995년 1월. 우리 교회가 탄생했다.
썰렁한 대지 한복판에 논바닥을 메워 조립식으로 세워진 건물은 십자가만 떼면 영락없는 곡물창고였다. 오십평 건물의 바닥 면적에 칸을 막고 이쪽 서른 댓평을 교회 본당으로, 저쪽 열 댓평을 담임목사 사택으로 사용하면서 온 세상이 내 것인 양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 교회당 맞은쪽에 홀로 사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한용제’라는 이름 하나, 그리고 버려진 박스를 모아 돈을 만드는 일이 이력의 전부인 그. 그분이 교회당에 오면 역한 술 냄새가 예배를 하는 성도들의 코를 찔렀다. 내가 설교를 하고 있는 동안 어느샌가부터 그분의 코를 고는 소리와 나의 설교 음성이 뒤섞여 있었다. 그분에게 나 혼자만 부르는 ‘나사로’라는 별명을 붙여 놓고 있었다. 나사로의 집을 한 달에 한 번꼴로 방문하는 날이면 나와 아내는 설레었다. 아내가 만들어간 음식을 맛있게 들며 우리 아이들의 재롱을 보면서, “아하, 고것들 참 잘한다”며 만면에 웃음을 만들던 그 모습이 우리 부부를 설레게 했었다. 내가 “할아버지, 뭐가 소원이세요? 뭐라고 기도해 드릴까요?”라고 물으면 “오래 살고 싶지!”라고 답하던 분이다.
내 기도가 약했던지, 몇 개월 후에는 중병을 얻어 마지막 숨을 몰아쉬게 되었다. 나사로가 하늘로 가시던 날 그분은 내게 일생일대의 큰 선물을 안겨 주셨다. 중환자실에서 간호사가 다급하게 불렀다. “한용제 환자 보호자님 들어오세요. 곧 돌아가십니다.” 나와 아내가 들어갔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나사로의 손을 잡고 기도를 드렸다. 이 힘들었던 인생의 영혼을 마지막 하늘로 향하는 길에 주님의 천사의 영접을 받게 하여 달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 간절하고도 짧은 기도가 끝나자 간호사의 조금은 사무적인 말이 들려왔다. “돌아가셨어요.” 그분은 내가 기도하는 순간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이 보내신 천사의 영접을 받으며 육체의 내 손에서 영혼의 손을 천사에게 맡기고 가지 않았을까? 오호, 이 큰 영광이여! 영혼을 위하여 일하는 주님의 종으로써 한 영혼이 숨지는 그 순간에 기도를 드리며 올려 보내드리는 일은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희귀한 일 아닌가? 그 귀한 기쁨을 나사로는 나에게 주고 가셨다. 뿐이랴, 그분의 육체를 마무리하는 영광도 보너스로 주시었으니…. 나사로에겐 연고가 없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 나타나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는 그 나사로의 누구도 환영치 않는 시신을 사택으로 쓰던 방에 모셔 와서 빈소를 차렸다. 교회 문 앞에 상가 등을 걸어 놓고 동네의 어르신들에게 부고를 전했다. 평소 측은히 여기고 이웃이 되어 주었던 분들이 한 분 한 분 찾아와 고인을 향해 큰 절을 올리며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마침 그날은 교회 창립 3주년 기념일로서 부흥회가 예정된 날이었다. 월요일 오전에 대전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가 된 나사로와 이별을 하고 그날 저녁부터 부흥회를 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는 특별 부흥 강사를 초빙해 유별난 감동과 결단을 한 것보다 더 큰 의미의 부흥회를 이미 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장례식 또한 나사로가 나와 우리교회에게 주고 간 큰 선물이 아니랴? 그 후로 십 수년이 흘렀다. 교회에는 많은 사람이 다녀갔지만 그 나사로만큼의 의미 있는 만남은 없는 것 같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특히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아픔이 느껴질 때마다 나사로, 한용제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 나사로를 향한 그리움, 그런 아릿함을 갖고 살 수 있는 작은 행복도 그분을 만나게 해 준 하늘의 선물이 아닐까? 한 달여 전쯤 나는 성도들의 투표에 의해 위임목사의 요청을 받았다. 앞으로 맡겨진 십 수년의 목회는 모든 성도를 그 나사로를 만나듯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작은 기도의 제목이다. 이렇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태 25: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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