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평화를 위해 돌덩이 지켜보기
참평화를 위해 돌덩이 지켜보기
  • 정효준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 승인 2011.08.08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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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반가운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로마에서 공부할 때 함께했던 타교구 후배 신부 전화였습니다. 아직 공부를 하고 있는 그 친구가 여름 방학을 맞아 한국에 휴가를 왔다고 합니다. 서로 어려운 상황에서 만난 사이라 그런지 쉽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전화 연락하며 안부를 묻곤 했는데 한국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니 갑작스러운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서로의 스케줄을 맞추고 만날 약속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본 그 친구는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함께 공부할 때는 각오를 단단히 한다고 삭발을 했었는데 지금은 베토벤 스타일로 변해 있었고, 살도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병대 출신다운 거친 말투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무척 반가웠고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의 근황과 교수 신부님들 이야기,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외로움과 유럽 다른 나라들을 여행한 이야기 등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미사도 함께 봉헌했습니다. 분명 즐거웠습니다.

문제는 그 친구를 보내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찾아왔습니다. 왠지 기운이 없고, 수렁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깊은 밤에 깨어 혼자 있음을 확인했을 때처럼 외로움이 밀려왔습니다.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새벽 1시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

한국에 돌아와 얼마간 그랬습니다. 잠자리가 편하지 않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가 잠자리에 들면 뭔가 허전한 마음이 엄습했습니다. 처음에는 본당 신부라는 직분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원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중단하고 돌아온 학업 때문이었습니다. 너무나 늦게 찾아온 내 삶의 실패라는 터널이 그렇게 깊을 줄은 몰랐습니다. 후회를 해 보기도 하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다독이기도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내 마음의 호수에 돌 하나가 던져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빨리 떨쳐버리고 싶었습니다. 마음의 호수에 던져진 돌덩이를 빨리 없애고 싶었습니다. 그 돌덩이를 없애야 내 마음의 호수가 잠잠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돌덩이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휘저었습니다. 알맞은 영성 서적을 찾아 읽기도 하고, 선배 신부님을 찾아 면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돌덩이는 찾아지지 않고 휘저은 마음의 호수는 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알았습니다. 그 돌덩이를 지켜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돌덩이를 꺼내는 것은 내가 아님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호수에 떨어진 돌덩이를 외면하려 합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며 인내하기보다는 무관심의 자리에 섭니다. 하지만 마음의 파장을 외면하는 것은 거짓 평화입니다. 거짓 평화는 떨어진 돌덩이를 외면하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결국은 자신의 마음을,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신앙 안에서의 참평화는 무엇인가 먹다가 체한 것 같은 거북함을 동반합니다. 그 거북함은 인내를 필요로 하고, 인내는 희망을 낳습니다. 그 희망이 바로 참평화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세상이 주는 거짓 평화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주님의 십자가가 그랬습니다. 구세주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는 것이었고, 구세주를 모르던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였던 그것이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오늘 하루 어떤 돌덩이가 당신의 고요한 마음의 호수에 떨어졌습니까. 애써 외면하며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거짓 평화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찾기 위해 호수 속을 휘젓지 마십시오. 더 큰 파장이 일어날 것입니다. 고요히 지켜보며 기다려 보십시오. 당신이 생각하지 못한 시간에,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참평화로 인도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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