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휴산방(修休山房)
수휴산방(修休山房)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1.07.19 1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심억수 <시인>

장마가 계속되어 몸과 마음이 눅눅해진 주말, 오랜만에 나만의 시간이 허락되었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비처럼 나의 일상도 준비된 우산 없이 온몸으로 삶의 빗줄기를 그대로 맞아 흠뻑 젖어버린 기분이다. 비가 잠시 그쳤다. 마음을 말려야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마음의 습기를 걷어낼까 궁리하던 차에 최 시인과 신 시인이 감자를 캐러 가자고 하여 따라나섰다.

우리 가족과 최 시인과 신 시인의 가족은 오래전부터 속을 터놓고 지내는 막역한 사이다. 지난 여름 두 시인의 가족이 괴산 갈은 마을에 빈집을 구해놓았으니 수리하여 주말이면 함께 지내자고 제의를 하였으나 선뜻 동참하지 못하였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보고 느낀 산골 생활의 불편한 기억에 자신이 없었다. 시골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은 늘 간절하였다. 그러나 실천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으로 동경하며 꿈만 꾸는 것으로 나는 만족할 뿐이었다.

그러나 두 가족은 삼복더위에 구슬땀을 흘리며 벽지를 뜯어내고 황토를 바르고 주변을 정리하였다. 나는 아주 가끔 건성으로 일손을 도우며 지켜보았다. 저 볼품없고 쓰러져 가는 시골집이 제구실을 할까 궁금할 뿐이었다. 그들의 노력은 시간이 지나자 제법 그럴듯한 운치 있는 집으로 변신시켰다. 집수리가 끝나자 시골집의 이름이 수휴산방(修休山房)이라는 근사한 문패도 걸었다.

작년 한 해를 집수리로 온 정성을 쏟더니 올해는 농사를 짓는다며 주말이면 으레 수휴산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감자 옥수수 상추 고추 호박 등 제법 농사를 잘 지어 놓았다. 싱싱하게 자란 농작물을 보면서 대견하기도 하였다. 농사의 지식이 없는 그들은 이리저리 귀동냥으로 감자 서너 줄을 심었단다. 다른 집 감자들이 한 뼘은 자랐을 때 씨감자를 구해서 묻었다며 잘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하곤 하였다.

갈은 마을로 가는 길은 참으로 아름답다. 괴산댐이 쏟아 내는 물기둥이 장관이다. 괴산댐을 끼고 외길로 접어들면 겨우 자동차 한 대가 다니는 길이다. 굽이돌아가는 길은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곡선의 비경이다. 울창한 소나무는 휘어 자랐지만 고고한 선비의 위풍당당한 품위를 잃지 않아 마음이 숙연해진다. 차창을 열고 깊게 심호흡을 해본다. 비 갠 먼 산자락에 바람은 능숙한 필치로 비단 한 조각 그려 놓는다. 생존경쟁의 각박한 도시에서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자연의 일부인 나를 잊고 지냈었다.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마음속으로 미안하다, 미안하다 사과하면서 가는 곡선의 비경은 어느새 도시에서 찌들었던 마음을 정화해주며 수휴산방에 도착하였다.

앞마당 모퉁이에 자란 상추를 뜯고 고추를 땄다. 뒤뜰에 멋대로 자란 질경이, 씀바귀잎을 따서 푸성귀 가득한 밥상을 마주하고 참으로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식사하고 감자를 캐기 위해 텃밭으로 나섰다. 장맛비를 온몸으로 받아낸 감자가 정말 알이 찼을까 싶어 싹을 들어 올렸더니 조랑조랑 감자 들이 딸려 나온다. 알이 굵은 감자는 비를 잔뜩 머금은 진흙을 붙들고 딸려 나오려 하지 않는다. 문득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와 불편하다는 이유로 쉽게 동화하지 못했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첫 수학에 스스로 감격하는 최 시인과 신 시인의 자연을 닮으려는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밭고랑에 앉아 웃고 떠드는 사이 몸과 마음의 긴장과 경계는 나도 모르게 모두 풀어졌다. 오감은 열리고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푸른 감동과 코로 느끼는 녹색의 향기가 온몸에 전율로 퍼진다. 발밑에 부드러운 흙의 감촉은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감자 한 바구니 받아들고 생각이 많아진 하루였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배추씨를 심는다고 한다. 이제 나도 틈나는 대로 수휴산방(修休山房)에서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 적어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