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고르며
옷을 고르며
  • 정상옥 <수필가>
  • 승인 2011.07.18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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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상옥 <수필가>

비가 오면 괜히 마음이 들뜬다. 반가운 기별이라도 올 것 같은 설렘이 자꾸만 인다.

부산한 아침시간이 지나고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나만이 호젓이 남겨졌다. 아침나절 복잡하고 좁게만 느껴졌던 거실은 만조의 바닷물이 빠져나간 후처럼 황량하리만큼 넓어 보인다. 곳곳에 던져 놓은 옷가지가 밀려가는 바닷물에 남겨진 해초처럼 군데군데 흩어져 있지만 오늘만은 뒷정리를 못한 식구들을 향해 투덜거리지 않았다.

대개의 아침시간은 촌음을 아끼며 종종걸음을 치지만 오늘처럼 빗소리가 시계의 초침보다 먼저 들려올 때면 나는 한없이 여유로워지고 너그러워진다.

무엇을 할까.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은 이 여유를 어떻게 써야 할까. 말이 없고 조용한 친구를 불러 고향 뒷산으로 패랭이꽃을 보러 가자 할까. 지금쯤이면 원추리도 진노랑꽃을 피웠을 것이고 보랏빛 도라지 꽃봉오리에도 빗방울이 눈물처럼 방울방울 맺혔을 텐데….

기억 속에서 한참 멀어진 고향의 추억은 그냥 그리움으로 가슴에 품고 있을 때가 아름다운 것이리라. 사랑은 마주보며 뜨겁게 나눌 때가 행복한 것이고.

화장을 마치고 옷매무새까지 단정하게 매만진 후 옷장을 열어젖혔다. 묵은 옷들을 꺼내 놓고 불가항력처럼 버티던 옷장을 밀어서 위치를 바꿔 놓은 후 작은 소품들도 진열을 해 놓으니 방안 분위기가 바뀌고 새로운 느낌이 든다. 조금의 변화를 주었음에도 이렇듯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을…

내가 살아온 모습은 어떠했을까. 어떤 변화도 주지 않고 수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같은 사고(思考)와 고정관념이 나를 대하는 사람들에게 갑갑함을 주지는 않았는지. 타성에 젖어 아집으로 버텨온 우매한 삶은 한곳을 정하여 앉으면 이탈할 줄도 모르고 적당히 타협하며 섞일 줄도 모르며 살아왔다. 천성의 게으름의 탓도 있겠지만 부족한 용기가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도전할 줄 모르고 개척하지 않는 삶에 어느 누구도 먼저 손을 내밀어 끌어주지는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껍질 속의 달팽이처럼 테두리 안에서 쉽게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진작 골라내야 했을 쓸모없는 옷가지들처럼 답답하게 나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찌든 습성과 잘못된 눈대중들도 옷을 고르듯 선별할 수 있는 정안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적 어머니는 심기가 편치 않은 날이면 장롱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언제 열어보아도 정갈하게 정리된 옷장 앞에서 밤이 이슥토록 그 옷들을 다시 매만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좀은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곤 했었다.

지금의 내가 어머니의 모습이 되어 다시 옷장 앞에 앉는다. 입을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가려놓고 보면 버려야 할 쪽으로 양이 더 기울어진다.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처럼.

어머니는 밤이 이슥토록 옷장 앞에 앉아 꼭 옷 정리만을 하셨던 것이었을까. 옷가지를 귀를 맞춰 반듯하게 담아 놓듯이 삶 속에서 버려야 할 마음과 지켜야 할 도리를 고르고 잘못된 편견과 흩어졌던 이성을 하나하나 간추리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맞고 계셨던 건 아니었는지. 그런 밤이 지나고 아침에 눈을 뜨면 환하게 밝아진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까.

비가 내려 참으로 좋은 오늘, 옷장 속의 옷을 고르며 내마음속에 겹겹이 쌓아놓았던 허물과 결점들도 들추고 끄집어 골라 내보려 한다. 비가 그치고 다시 솟은 환한 햇살 아래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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