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세요?
누구세요?
  • 김송순 <동화작가>
  • 승인 2011.06.20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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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송순 <동화작가>

우리 집 둘째 딸은 열아홉이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인 고3이다. 그래서 꽃처럼 아름다운 열아홉을 낮이나 밤이나 책상 앞에서만 지내야 하니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난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이 고빗길만 무사히 넘으면 너에게 넓고 밝은 세상이 온단다"라며 아이를 몰아세우는 나쁜 엄마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집 둘째 딸은 가끔씩은 슬금슬금 열아홉 살을 만끽하고 싶은지 긴 다리를 드러낸 짧은 반바지와 목선이 많이 파인 타이트한 티셔츠를 입고는 친구들과 시내 영화관으로 달려가곤 한다. 그런 딸을 보면 남편은 노발대발하지만 난 얼른 남편 손을 잡아당기며 속삭이곤 한다.

"오늘은 그냥 모른 체하자고. 인생에서 열아홉은 길지 않잖아."

그러면서 나는 멀어져가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곤 한다. 내가 봐도 우리 집 둘째 딸은 참 예쁜 열아홉이다. 내 열아홉도 저렇게 예뻤나 하는 생각을 하면 은근히 부러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기말고사를 준비하느라고 바쁜 둘째 딸은 목마른 화초처럼 시들시들하다.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도 난 딸에게 하루 동안 만이라도 푹 쉬어보란 말을 하지 못하니 역시 나는 나쁜 엄마임이 분명하다.

오늘 아침에도 잠이 부족한 딸은 잠자리에서 시들시들 일어났다. 그리고는 0시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 학교 갈 준비를 서두르다 문득 생각났는지 가방 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내 앞으로 내밀었다. 지난번 친구들하고 시내에 영화 보러 갔다가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언뜻 바라보니 사진 속 아이들은 우리 집 둘째 덧ㅃ럼 모두 한껏 멋을 낸 모습들이었다. 역시 열아홉 살은 우리 집 딸이나 남의 집 딸이나 예쁘기는 마찬가지다. 내 열아홉도 이렇게 예뻤을까하는 생각이 또 들며 내 열아홉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순간, 난 현관문을 향해 뛰어가고 있는 딸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이 사진관 어디에 있는 거니"

내 말에 아이는 눈을 크게 뜨며 왜 그러냐고 묻는 듯했지만 시간이 없는지 문자로 알려주겠다는 말을 남기며 문 밖으로 사라져갔다. 그리고는 얼마 후에 딸은 내 전화기에 사진관 위치를 적어놓고는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난 답장을 하지 않았다. 나도 그곳에 가면 너처럼 예쁜 얼굴로 찍힐 것 같아 그런다고 말하기에는 쑥스러웠다. 둘째 딸이 알려준 사진관은 시내 번화가에 있었다. 사진관 이름도 포토 뭐라며 외국어라 금방 외워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젊은 사진관 주인은 참 친절했다. 우선 사진기로 내 얼굴을 찍더니만 내 의견은 물을 것도 없이, 아니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컴퓨터 화면 위에 띄워놓은 내 얼굴을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참으로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커버력이 좋은 파운데이션으로 화장하듯 피부를 하얗게 만들고, 눈도 크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턱선도 정리하고. 그렇게 난 젊어져가고 있었다. 그것을 들여다보며 난 연방 사진관 주인의 손놀림을 칭찬하고 있었는데, 주인은 컴퓨터 마우스에서 손을 내려놓더니 프린트된 사진 여러 장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어때요? 맘에 드세요?"

사진관 주인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연방 웃어대던 내 입은 굳게 닫혀가고 있었다. 너무 예쁜 얼굴이었다. 내 작은 눈은 어디로 갔어? 쳐진 피부는 왜 이렇게 탱탱해졌고? 그리고 각진 턱은 왜 이렇게 둥그래졌어?

난 사진을 들여다보며 작게 중얼대고 있었다.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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