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게 아니어도 웃어
웃는 게 아니어도 웃어
  • 정상옥 <수필가>
  • 승인 2011.06.1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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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상옥 <수필가>

도심의 아파트 담장 너머에서도 넝쿨장미가 화사하게 웃고 있단다. 볼그레하니 얼굴에 홍조를 띠고 매혹적으로 웃는 웃음소리가 초여름 바람에 실려 집으로 날아들었나. 우리 집 거실 안이 온통 웃음바다다. 남편도, 아이들도 까르르 웃어대니 옆에 있던 강아지까지 자그마한 몸체를 겅중겅중 뛰면서 웃어댄다.

TV의 모 개그 프로그램에 개그맨이 나와서 자기가 얼마나 웃기는지 본인을 보면 시골 보리밭에서 보리 싹이 일렁이고 경운기도 웃느라 탈탈거린다나.

집 안의 세탁기도 입 안에 거품을 물면서 통을 데굴데굴 굴리며 웃어댄다니 그의 개그가 정말로 얼마나 웃기는지 아이들 틈에 끼어 앉았다. 한참을 눈여겨보며 화면 속의 그 사람에게 눈과 귀를 다 열고 시청했지만 몸동작이나 내용이 내게는 좀체 웃기는 것이 아니다. 나를 제외한 식구들은 개그맨의 말 한마디, 몸동작 하나하나에 허리가 휘도록 웃어대는데 멀뚱하게 앉아 있는 나만 이방인이 된 느낌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열심히 연기하는 그 사람 뒤에 서린 광대의 서글픔 같은 그림자가 내 눈에는 더 크게 보이는 것만 같아 괜스레 마음까지 짠했다. 감성이 무뎌진 것일까, 내 마음과 눈에 때가 끼었나. 프로가 다 끝나가도 도통 하나도 우습지가 않으니 아무래도 내가 정상이 아닌 것 같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주고 받으며 웃어대는 식구들 속에서 멀뚱하게 앉아 있다 보니 뭔지 모를 소외감마저 느껴져 슬그머니 일어나 안방 화장대 앞으로 와 앉았다.

세상천지가 여름으로 내달리며 생동하는 초록의 물결로 일렁이는데 직면하는 인간사는 무겁고 우울한 소식들뿐이었다. 여름이 성큼 다가왔지만 꽁꽁 얼어붙었던 경제동향은 좀체 풀릴 것 같지 않고 지인들의 애사, 그리고 우환들이 생동의 계절과는 상반되게 어둡기만 했다. 이 일 저 일 암만 돌이켜봐도 나는 요즘 도대체 웃을 일이 없는데.

화장대 앞에 앉아 내 얼굴 표정을 무심히 바라보다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거울 속에 비치는 칙칙하고 건조한 여인이 과연 나였던가. 그러고 보니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본 것이 언제이고 배를 움켜지고 허리가 휘도록 파안대소한 것이 언제던가 가물가물하다. 나이를 더할수록 늘 더 큰 행복을 갈구하고 오늘을 감사하기보다는 내일을 미리 걱정하니 웃을 틈이 어디 있었으랴.

우여곡절 많은 세상살이가 꼭 웃을 일만 있어 웃었던가. 허무해서도 웃고 기가 막혀서도 웃었지만 웃다보면 정말 웃을 일이 툭툭 생기곤 했었지. 꼭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는 말처럼.

허투루 지나쳤던 삶의 편린 속에서 지난 일들을 유추해 보면 화내거나 울 일보다는 웃을 일들이 더 많았음인데 언제부터인가 작은 행복에는 감사할 줄 모르고 늘 큰 것만을 갈구했던 어리석음이 내 젊은 날의 아름다운 미소를 잃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팍팍하고 건조한 삶에서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물하는 개그맨이 행복의 전령사이며 함께 웃을 때 동참하지 못하는 냉랭한 내 존재가 더 서글프고 짠했던 것임을 깨닫지 못한 아둔함이 정녕 부끄럽기만 하다.

웃는 게 아니어도 많이 웃으리라. 한 번 웃을 때마다 내 얼굴에도 지난날의 생기 발랄의 고운 표정이 다시 찾아와 젊음을 되돌려 놓을지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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