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대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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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효준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 승인 2011.06.0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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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정효준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죽음이 있습니다. 어떤 죽음은 조금 멀리서 혀를 차는 정도의 안타까움으로 다가오고, 어떤 죽음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죽음과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죽음이 코앞에까지 다가온 듯 허둥대다가도 다시금 천년만년 살 것처럼 방심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한 달 전 친구를 잃었습니다. 사제가 되기 위해 10년을 함께해 온 친구를 조금 일찍 보냈습니다. 학생 때에도 사실을 위한 거침없는 말과 충고로 놀라게 했던 친구였는데, 마지막까지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렇게 놀란 가슴을 추스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나를 기다려 주고 격려해 주는 본당 신자분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늘 나라에 든든한 백 하나 생겼다고 위로하며 본당 업무에 돌아왔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미뤄왔던 본당 신자 전체를 대상으로 신앙 설문 조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문항을 열 가지 만들어서 신자분들의 신앙 생활도 체크하고 3년간의 저의 사목에 대한 평가도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설문지가 모여져서 집계를 했습니다. 솔직히 집계를 하면서 기대한 바도 있었습니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고, 설문조사의 결과가 그 생각을 입증해 주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가장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강론 부분에서 불편함을 표시한 분이 있는가 하면 신중하게 세웠던 사목 방향에 대해 불만이 있다고 체크하신 분들이 계신 거였습니다. 결과에 대해 평가를 하면서 불편해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객관성을 잃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얼른 책상에서 일어나 성당을 향했습니다.

조용히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서품 받을 때 누군가 선물로 준 시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사제가 자기를 드러내면 그리스도는 뒤에 숨어 버리고

사제가 잘난 체하면 그리스도는 몸을 돌려 버리고

사제가 자기를 높이면 그리스도는 영영 떠나 버립니다.

사제가 겉으로만 겸손하다면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척하고

사제가 진심으로 겸손하다면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발견하며

사제가 성인처럼 겸손하다면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닮습니다.

늘 겸손한 마음을 지니도록 기도하십시오.

차분한 마음으로 사제관으로 돌아와 설문지를 다시 꼼꼼히 읽었습니다. 정말 고마운 분들의 충고와 격려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주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언젠가 교수 신부님께서 본당을 떠날 때 100명 중 51명이 칭찬해 준다면 잘 산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기왕이면 100명한테 다 칭찬들어야지.'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생각이 희망이 아니라 욕심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희망은 기쁨을 낳고, 욕심은 실망을 낳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욕심으로 시작된 마음은 주어진 '51'이라는 선물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사실 많은 경우 우리의 고통은 70을 바라며 혹은 80을 욕심내며 시작됩니다. 내 바람의 수치를 조금 낮추는 겸손은 행복이라는 기쁨으로 돌아온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론을 우리는 잠시 잊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많이'를 외치는 세상의 물결에서 잠시 벗어나 보는 것은 어떠십니까. 당장은 소외되는 것 같고, 뒤처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코 늦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지친 발걸음을 옮기는 동료의 옆을 힘찬 걸음으로 지나게 될 것입니다. 기쁨에 찬 모습으로 말입니다.

먼저 간 동료 사제를 추모하며, 나 또한 한발 물러서는 겸손을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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