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여유
내 삶에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여유
  • 이규정 <소설가>
  • 승인 2011.05.0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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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규정 <소설가>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에서 한 해를 보낸다. 올해도 춘(春)3월에 들어서면서 소생하기 시작하는 새싹들이 움트기 시작했다. 4월에 들어서는 활짝 피어나는 봄꽃들이 제법이나 화려하다. 봄꽃놀이를 즐기겠다고 적잖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유원지에서는 봄꽃보다 인(人)꽃이 더욱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봄꽃놀이가 한창인 요즘에도 신작소설 출간준비를 하겠다고 주저앉은 책상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출간준비를 마치고서야 어수선한 책장정리를 하는데 주민등록초본이 불쑥 튀어나왔다. 슬그머니 잡아드는 주민등록초본을 훑어보니 이사를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서너 장이나 되었다. 더군다나 판잣집의 단칸셋방에 살았던 시절에는 서너 달을 넘기지 못하고 이사를 하였다. 연탄가스가 스며드는 방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셋방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내와 결혼하고서도 단칸방에서 갓난아이를 키우며 살았다. 연탄가스가 스며드는 방바닥을 테이프로 막으면서 키우는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면서야 윗방이 달라붙은 전세방을 얻었다. 하지만 토끼장이나 다름없는 전셋집에도 제법이나 많은 사람들이 앞마당을 마주보고 살았다. 앞마당에 수도꼭지가 달라붙었지만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서 한참이나 내려가는 구멍가게에서 얻어다 먹었다. 수도세에 적잖은 물세를 더해주고서야 얻어먹는 수돗물이 있었다는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한겨울에는 슬레이트 지붕에서 제법이나 차가운 냉기가 스며들고 한여름에는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는 열기가 내려앉았다. 아내가 이른 새벽에 건네주는 도시락을 잡아들고 쫓아가는 공사장에서 흘리는 식은땀은 소금 꽃이 되었다. 제법이나 높은 건물에서 흔들거리는 철근에 매달리면서 또한 죽을 고비를 넘기는 순간들이 스쳐가면서 화들짝 놀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내가 또한 임신을 하고서도 맞벌이를 하겠다고 쫓아다니면서 적잖은 고생을 하였다. 아내까지 적잖은 고생을 하고서야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겼지만 쪼들리는 살림은 여전하다. 하지만 아무런 불평불만도 살림하는 아내와 무탈하게 자라주던 자식들이 고맙기도 하다. 이제는 성년이 되어서 자기의 자리를 잡아가는 자식들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주야로 근무하는 직장에서 30년이 훌쩍 넘었다. 적잖은 세월이 흘렀지만 잠시라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여유조차 없었다. 오늘에서야 우연찮게 잡아드는 주민등록초본에 스쳐가는 추억들이 하룻저녁의 꿈만 같기도 하다. 이제는 애틋한 추억들조차 곧바로 사라질 듯이 가물거리는 순간들이 아쉽다는 한숨이 멈추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아쉬워도 되돌리지 못하는 것이 세월이다. 누구도 거스르지 못하는 세월을 탓하고 원망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앞으로 남아 있는 삶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 또한 쉽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더하는 욕심을 버리고 내 삶에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여유를 즐기면서 살아야겠다. 괜스레 하찮은 욕심으로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한동안이나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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