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매기기
성적매기기
  • 김송순 <동화작가>
  • 승인 2011.04.18 20: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송순 <동화작가>

우리 집 아이들은 예능 프로그림을 좋아한다. 시간만 나면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아 깔깔대는 모습이 한심해서 좀 더 내실 있는 교양 프로그램을 보라며 구박을 해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락프로그램에 등장한 인물들의 움직임과 그들의 대화 속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난 조용히 그 자리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늘 시험에 쫓기고 과제물에 쫓기는 아이들 얼굴 속에서 오랜만에 보는 함박웃음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나는 아이들이 켜 놓은 오락프로그램에 한참 동안 빠져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그 프로그램은 모 방송국에서 만들었는데,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가창력을 소유한 레전드급 가수들이 노래를 통해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그 게임의 핵심은 7명 중에서 '한 사람은 탈락해야 한다!'이다.

심사도 방청객의 투표로 이루어지니 가수에게는 무대마다 극도의 긴장감을 주는 아찔한 무대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가 떨어지려나'하는 궁금증을 갖고 지켜보는 시청자에겐 지극한 고민을 주며 짜릿한 재미도 주니 그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텔레비전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떨어트린다는 것은 역시 어려운 문제였는가 보다.

그러니 방송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담당 PD가 교체되고, 출연한 가수가 자진 하차하며, 한 달 동안 결방하는 사태까지 오게 된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역시 평가를 받고 순위가 매겨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우리를 슬프게 하는 카이스트 사건도 이러한 문제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얼마 전 신문 기사에서 읽은 IQ 210의 '잊힌 천재'로 불리는 김웅용씨의 인터뷰 기사 한 줄이 생각난다.

"1등만 해 왔던 아이들이 하위권을 맴돈다면 그가 느꼈을 자괴감과 부모님 기대를 저버렸다는 자책감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오늘 아침 우리 집 막내는 배가 아프다고 찡찡거리다 학교에 갔다. 생각 같아서는 오늘 하루 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중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째로 접어든 아이를 결석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 가서도 계속 아프면 조퇴하고 오란 말과 함께 아이를 배웅했지만, 아이의 마음이 헤아려져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아이는 분명 다음 주로 다가 온 중간고사에 심리적 불안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초등학교 때는 등수가 나오지 않았는데 중학교 때부터는 등수가 매겨지며 잘하는 애와 못하는 애의 서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서열은 고등학교 진학에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오늘 학교를 향해 힘없이 걸음을 내딛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아이가 부디 경쟁의 바다에서 무사히 헤엄쳐 나오길.

그 경쟁의 바다에서 조금 떨어지더라도 자괴감이나 자책 같은 것은 절대로 느끼지 않고 당당하게 세상 속으로 헤엄쳐 나오길.

오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 말을 꼭 해 줘야겠다.

"엄마는 우리 딸이 우등생이 아니더라도 항상 웃는 얼굴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자신을 가장 많이 사랑하는 딸이었으면 좋겠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