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물으신다면
'사랑'을 물으신다면
  • 신서옥 <시인>
  • 승인 2011.04.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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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서옥 <시인>

- 나의 벗 심주에게

'사랑!' 인류 최대의 가치 단어일 겁니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변할 수 없는 신의 존재 이상의 단어일 겁니다.

모든 단어에는 인간이 만든 관념이 들어있지만 이 단어는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이 더 깊이 차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인간의 원초적이며 창조적인 이 단어를 어찌 정의라는 말로 '이런 거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짧지 않은 세월 살아오며 알고 있는 사랑이란 아픔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아픔에 비례하여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음양의 원리를 거역할 수 없고 본질적으로 남·여의 합이 인간의 속성인지라 둘이 아닌 하나로 살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사랑은 누군가의 상대가 있는 행위인데 그 근본 명제를 없애고 하나라는 것으로 치환하려 하면 문제가 생기니까 전제를 인정하고 그 틀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인간의 욕망이 그 주어진 한계를 넘으려다 모든 화를 자초하는 겁니다.

사랑의 본능만을 위한 삶은 사랑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과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사랑의 본능을 넘어 본질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어떠한 언행으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든지 감추든지 그건 우리의 뜻대로 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의 기가 우리를 묶어서 흐르게 하고 있다는 겁니다.

큰 흐름의 물줄기는 어찌하지 못하지만 그 물줄기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것은 위치를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똑같은 물줄기라도 그 흐름의 역할과 받는 것이 다르다는 겁니다.

주어진 것이 1이면 하나에 만족하고 2이면 둘에 만족하다 보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삶과 사랑도 우리의 크기에 꼭 맞는 삶과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늘 부족해서 허덕이기보다 여유롭게 즐기며 감사하는 삶과 사랑을 원해야 합니다.

여유롭다는 것은 인간의 상대가치가 아니라 절대가치의 주관적 관점이라는 겁니다. 단지 그 일을 어떠한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과정이나 결과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어떠한 상황이나 일도 그런 마음자세라면 다 즐겁고 행복하게 결과를 만든다는 겁니다. 아주 매력적인 해결책이라는 겁니다.

결국은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과 똑같은 것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들 때 필요한 사고입니다. 실천이 어렵기에 그런 것이 사람들 머리에서 나왔고 사람이기에 그리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인간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것은 인간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단지 그릇만큼 보이는 만큼 아는 만큼만 되지만 그 한계는 노력을 어찌 하느냐에 따라 변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주어진 그릇에 맞는 주어진 한계를 인정하며 물 흐르듯이 흘러가면 그게 멋진 인생이라는 겁니다. 그것의 최종이 道 같은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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