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도 행복한 세상
꼴찌도 행복한 세상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1.04.1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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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작은아이의 자모회에 다녀왔다. 저녁내 머리가 아프고 우울하다. 일 년에 한 번 공식적으로 선생님을 뵐 수 있는 기회이니 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교문에 들어서자 대형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빨간 글씨로, 이번 대학입시에서 학생들이 얼마나 선전했는지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총자모회가 끝나고, 반 자모회시간이었다. 담임선생님이 누구누구 어머니라고 말하는데 반장, 부반장 엄마를 비롯하여 모두들 우수반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의 엄마들이다.

자모회에 가기 전 같은 반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딸이 공부를 못해 할 말이 없다며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 아이는 학생회 간부도 했고, 공부도 그리 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충청북도에서는 꽤 공부 잘한다는 학교로 오고 보니, 말 그대로 뒤 등수를 깔아주는 아이가 됐다. 1년이 지나면 괜찮겠지 했는데,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뒤돌아보니 나도 아이가 초등학생, 중학생일 때 누구 엄마냐고 물으면 큰소리로 누구 엄마라고 얘기했었고, 선생님이 칭찬을 할 때마다 어깨가 으쓱하기도 해서 한 번도 이런 경험이 없는지라 더 우울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다 자기 자리에서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고, 최고가 되면 그만큼 대접을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인생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성적 하나를 가지고 평가하는 교육제도의 모순이 왜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인지.

아이는 나름 적응을 잘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직은 아이에게 희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누구든지 몇 시간씩 토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생 자녀를 둔 사람이면 어쩔 수 없이 제도에 맞춰 공부를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일장연설을 하고 왔다. 그러고는 내내 마음이 아파 �:諛� 있다. 내가 자모회에서 공부 때문에 소외된 감정을 느꼈다면 아이는 오죽할까 싶다. 작은아이와 가장 친한 친구는 이런 학교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자퇴를 결정했다. 설마 했는데, 어제 아이와 통화하는 것을 들으니 4월의 아이 생일에는 같이할 수 없으니 미리 선물을 샀다며 만나자는 전화였다. 수시입학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아진 지금 상대적으로 내신이 불리한 아이는 전학을 생각하기도 하고, 자퇴를 고민하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의논하는 아이를 대학 때문에 제도권 밖으로 내보낼 용기가 없어 좋은 대학만이 꼭 성공한 인생은 아니라는 말로 달랬다. 그러면서도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먼 훗날 우리의 결정이 잘된 결정이었기를 바라본다.

록 장르만 고집하는 모 가수가 텔레비전 프로에서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심부름을 한 번만 시켰다면 자기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공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해서 뒤에 앉아 선생님이 심부름을 시키지 않을까 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선 선생님들도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신경을 쓰고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입시 성과가 좋은 학교라는 평가를 받는 현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인 듯하다. 꼴찌도 행복한 세상, 그런 세상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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