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경로당
  • 이진순 <수필가>
  • 승인 2011.03.2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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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진순 <수필가>


봄비가 내린다. 촉촉이 적셔주는 비는 얼어붙은 땅을 녹이고 꽃망울을 키운다. 여기저기 물길을 내고 흐너져 내리는 집 안팎을 손질하는 농부의 마음은 바쁘다.

봄비 내리는 날이면 경로당은 만원이다. 밖의 일을 할 수 없으니 갈 곳 없는 시골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경로당은 인기가 만점이다.

90%가 노인으로 구성된 마을은 젊은이들 구경하기가 힘들다. 주로 농사를 주업으로 살고 있는 노인들이다 보니 봄이 오면서 농사지을 걱정이 태산이다. 그것은 힘에 부쳐 며칠 일을 하면 병원을 찾는 횟수가 잦아지기 때문이다.

경로당은 희로애락이 넘실거린다. 겨울 내내 40여명의 회원들이 북적거렸다. 관의 지원금으로 따뜻한 방이 마련되어 있어 노인들의 쉼터로는 그만이다.

잠 없는 노인들은 일찌감치 조반과 집 안 정리를 끝내고 출근하는 분들이 많다. 봉사 정신이 투철한 증전 회장은 번번히 반찬을 이것저것 챙겨 가지고 오신다. 식당에 근무하는 K여사는 남은 음식을 챙겨 조달해 주기도 하고 시내로 이사 가시고도 정이 아쉬워 번번히 먹을거리를 싣고 놀러 오시는 분도 계시다. 돌려가면서 집집마다 쌀 한 말씩 가져와 양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협조를 아끼지 않는 인정이 풋풋한 마을이다.

사회복지시설이나 푸드뱅크, 교회 등에서 가끔 떡이나 반찬, 음료수를 보내와 회원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고맙다. 회원들은 매일같이 모여서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주로 10원짜리 고스톱을 오락으로 즐긴다. 만단치기 또는 윷놀이를 하는 날도 있어 늘 떠들레 법석이다.

협동심이나 때 묻지 않은 마을 어르신들의 놀이 문화나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는 모습이 안타깝게 보였다. 뭔가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사업이 있을 만도 하련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국악원 원장을 모셔다 노랫가락을 가르쳐 드렸더니 어르신들은 새로운 분위기에 흡족해 하셨다.

시내에는 평생교육시설이 여기저기 펼쳐지고 있지만 교통이 불편하고 노인이다 보니 거동이 불편하여 멀리 가는 것은 힘들다고 했다. 시간관념이 없는 노인들은 유일하게 경로당에서 만나는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것이 고작이다.

마을 경로당에 여기저기서 먹을 것을 후원해 주시는 것도 감사하지만 노인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고마운 마음을 심어 주고 지적인 정보나 노후를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교육을 통하여 들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노인들이 가족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나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알고 서로 나눔의 즐거움을 알게 될 때 사회가 밝아지지 않을는지...

평생을 농사짓는 일로 소일하시는 농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건강하게 노후를 아름답게 보내는 방법이 첫 번째일 것이다.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놀 때는 즐겁게 놀아야 하는데 노는 방법을 잘 모르신다. 시골 마을에 적합한 지푸라기 공예나 웃음치료, 쉽게 할 수 있는 건강 운동도 좋을 것 같다. 남을 배려하고 감사하는 방법과 인생을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노인들을 위한 건강 세미나 같은 프로그램을 경로당으로 순회하며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는지…

봄비 오는 소리가 정겹다. 개나리 진달래 꽃봉오리에 물오르는 아침에 경로당에도 희망 넘치는 까치 한 마리 날아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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