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다시는 어두운 역사를 쓰지 말자
[충청논단] 다시는 어두운 역사를 쓰지 말자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1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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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어린이날 가사처럼 5월은 모든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나무들은 열매를 맺기 위해 저마다 꽃과 잎을 낸다.

5월. 뒤돌아보면 싱그러운 봄소식 뒤엔 불행했던 아픈 과거의 역사들이 많다.

오늘이 5·16 군사혁명, 아니 박정희 소장이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날이다.

또 5월은 5·18 광주민주화 운동 기념일이 있다.

전두환 정권이 권력을 잡기 위해 무수히 사람을 죽인 사건이다.

제주하면 우리들은 아름다운 섬, 관광의 도시로 알고 있다.

제주의 아름다운 이면 속에는 역사의 아픈 상흔들이 많다.

식민지 시절 일본인들이 자국 영토 보호의 마지막 보루로서 제주에 알뜨로 비행장과 격납고를 만들고, 가마오름에 땅굴을 파 지하요새를 만들었다.

1947년도부터 발생한 제주 4·3사건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서 약 3만여명의 주민이 처형되었다.

지금 평택시 대추리 마을은 시끄럽다.

미군 기지를 세우려는 정부와 이를 막으려는 팽성 주민과 범국민대책위원회간의 서로 다른 주장이 팽팽하다.

결국 심한 몸싸움이 벌어진다.

미군기지 확장에 평택농민들이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팽성지역에서 285만평이나 되는 땅을 내주어야 한다.

농민들은 두 번이나 땅과 집을 빼앗긴 경험이 있다.

일제의 대동아전쟁 말기인 1941년 일본군은 비행장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의 땅과 집을 빼앗고 강제노역을 시켰다.

1945년 광복이 됐지만, 주민들은 땅을 돌려받지 못했고, 새로 개펄을 간척해서 살아야 했다.

6·25 전쟁 끝무렵인 1952년에는 미군이 기지를 만든다고 갑자기 땅을 밀고 집을 헐어 버렸다.

이렇게 주민들은 두 번이나 내 땅에서 쫓겨났다.

집도 없이 겨울을 나다 보니 어린아이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기도 했고, 작은 군용텐트에 두 가구가 살면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다시 개펄을 간척한 것이 오늘의 황새울 들판이다.

이전비용도 순전히 우리나라의 몫이다.

이종석 통일부장관은 2005년 5월 미국방문에서 “용산기지 이전비용이 10조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2004년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폭로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의 ‘용산기지 이전협상 평가결과보고’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 있었다.

보고서에는 “워싱턴 소식통에 의하면 절반만 이전하는 경우에도 20조원 가량의 비용이 든다”며 기지이전 협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전체 다 이전한다면 40조원이 든다는 이야기다.

대추리 주민들은 땅을 내줄 수 없다는 의지는 확고하다.

그들에게 보상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주민들이 백만장자라고 하며 더 많은 보상을 바라는 것처럼 매도한다고 했다.

미군기지 면적은 현재 454만 9037평, 새로 조성되는 면적 285만평, 예전에 있던 기지면적과 합치면 806만 8000평으로 늘어난다.

미국은 세계평화라는 명분아래 전쟁을 저지르고 있다.

평택미군기지는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남의 집 안방을 차지하려는 것이며, 때에 따라 한반도가 전쟁터로 변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외국군대가 한반도에 61년간 주둔한 적이 없었다.

정부는 대추리 주민의 소리와 범국민대책위원회의 소리를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이제는 어두웠던 역사를 다시 써서는 안된다.

“대통령을 우리가 세웠는데 잘못 세웠나봐!” “우리보고 여길 나가라면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여”라고 한탄하는 대추리 주민의 원성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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