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여유
비오는 날의 여유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6.28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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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최현성 <용암동산교회 담임목사>

얼마 전 유성에서 회의가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쏟아지는 빗속에 달리는 기분, 괜찮았습니다. 정말로 괜찮았습니다. 평상시 맑을 때 느끼던 주변의 복잡함이 보이지 않아 좋았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경관들이 시원하고 깨끗해 보임이 참 좋았습니다.

지나다니는 모든 것들이 모두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경치를 우경(雨景)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설경(雪景)도 아름답지만 그에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논과 밭에 내리는 비의 귀한 모습과 골짜기에 내려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의 묘한 모습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줍니다. 아마 우리나라의 비는 여름에 오기 때문에 따뜻함이 있고 더위 가운데 축축한 공기를 만들어 내기에 더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온갖 잡스러운 생각들이 하나로 모아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비는 늘 다정한 손님 같은 생각이 듭니다. 살며시 다가와 기쁨으로 만나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줌을 느끼게 되니 말입니다.

저녁때 모든 이들이 합의가 되어서 계룡산 동학사에 갔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비가 오니 모두 '빈대떡'이 생각이 났습니다.

모듬 빈대떡과 버섯찌개를 시켜놓고 저녁을 먹었습니다. 모두들 계곡 쪽을 바라보며 앉아서 생각나는 시도 읊고, 아득하게 먼 날이었지만 학교 다닐 때 부르던 노래도 불러보았습니다. 서로가 살아가는 이야기, 하고픈 이야기들이 왜 이리 많은지.

이야기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과 마음이 하나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이제까지 마음에 품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다 풀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정말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자신을 그 속에 던져봅니다. 세차게 흐르는 계곡물에 온갖 시름을 떠내려 보냅니다. 이리 저리 나부끼는 나무들의 움직임에 흔들리는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세찬 비를 맞으면서도, 흐르는 세찬 물줄기를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모진 바람을 맞으면서도, 그냥 그 자리에 묵묵히 자리하고 있는 바위덩이들을 보면서 어려움 속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견디는 모습을 배워봅니다.

벌 한 마리가 쏟아지는 빗속에 날지 못해 나뭇잎 사이에 숨죽이고 앉아 비 그칠 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어쩜 그렇게 애처로워 보이는지, 그래도 그에게 생명이 있어 호흡하고 있음에 많은 정을 느껴봅니다.

정말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모두들 함께 드렸던 말 한마디 "좋다"였습니다.

가끔씩은 이렇게 자연 속에서 자연을 벗 삼아 이야기하면 '마음도 넓어지고, 생각도 많아지고, 행동도 좋아질 텐데.'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런 여유를 갖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생각도 깊이 하지 못하고, 마음도 좁아지고, 행동하는 것도 게을러 질 때가 많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분주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가끔은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아니 잠시라도 마음의 여유를 느껴 보기 위한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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