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날씨-16회
신화속의 날씨-16회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21 22: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계속 진격하라, 세계의 끝이 바로 우리 앞에 있다.

”“왕이시여, 쏟아지는 비를 뚫고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합니다.

” 인도 원정에 성공한 알렉산더 대왕은 여세를 몰아 동쪽으로 계속 진격하고자 했으나 부하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너무도 충성스러운 부하들이었지만, 왕의 명령에 거역할 만큼 몬순에서 쏟아지는 폭우는 살인적이었다.

결국 알렉산더는 야망을 접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의 발을 멈추게 한 것은 몬순기후였다.

“해마다 아시아를 껴안고 벵골만 위로 흘러 방글라데시를 지나 서쪽으로 도는 힘과 남서쪽에서 아라비아 해로 불어오는 바람의 힘이 인도를 삼켜 버린다.

” 알렉산더 프레이터가 ‘계절풍을 쫓아서(Chasing the Monsoon)’에서 인도 몬순을 표현한 말이다.

인도에는 습하고 건조한 두 계절이 있는데, 인도를 흠뻑 적시는 해마다 6월부터 9월까지 비의 계절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비가 내린다.

체라푼지 지역의 경우 몇 달 동안 내리는 비가 우리나라 연 강우량의 10배가 넘는다.

인도 몬순에 대해 기상학적으로 설명한 과학자는 혜성연구가로 유명한 에드먼드 핼리이다.

아시아 대륙이 여름의 태양열에 가열되면 육지와 바다 사이에 큰 온도차가 생기게 되는데, 가열된 육지의 공기가 상승하게 되면 그 빈자리를 매우기 위해 습하고 찬 바다의 공기가 육지로 몰려와 비를 내린다는 것이다.

겨울에는 이와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핼리의 설명처럼 계절풍은 여름과 겨울, 반년을 주기로 반복된다.

계절풍(monsoon)은 아랍어의 계절을 뜻하는 마우심(mausim)에서 유래한 것으로, 중세기에 인도양의 계절풍을 항해에 이용한 아라비아인들에 의해 유럽에 전해졌다.

몬순은 인도 사람들을 강한 열기와 습기, 긴장에서 벗어나게 해 주며 그 해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너무 많은 비가 내려 지겨울 법도 하지만 인도 사람들은 몬순이 불어오는 것을 결코 싫어하지 않는다.

인도인들에게 몬순은 생명과도 같은 기상현상이다.

몬순의 비가 없이는 농사와 목축 등 거의 모든 1차 산업이 불가능해지기에 몬순을 다스리는 신은 인도에서 최고의 신이 된다.

인도에서는 타 지역 문명과 달리 자연현상을 의인화한 신들을 섬긴다.

그 중 몬순의 기상현상을 다스리는 신이 바로 인드라(Indra)이다.

그는 건기를 끝내는 몬순의 신이며 번개와 우레의 신이다.

“맹렬한 황소처럼 스스로 신들의 술을 손에 잡고, 큰 그릇에 가득 찬 물을 3번이나 마시고, 무시무시한 천둥을 뽑아 가뭄을 물리쳐 버렸다.

” 인도의 경전 리그베다에서 인드라를 찬양하는 말이다.

몬순의 신 인드라는 우주에 가득 차 있는 물을 마신 후 산 위에 똬리를 틀고 있는 가뭄의 뱀 브리트라(Vritra)를 죽임으로써 인도에 몬순의 비를 가지고 온다.

인도인들은 아직도 큰 뱀이나 용이 가뭄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세기 인도를 가장 괴롭혔던 기상현상은 가뭄이었다.

1877년과 1899년에 닥쳤던 엄청난 가뭄은 계절풍이 발생하지 않아 생긴 재앙이었다.

이 가뭄으로 수백만 명이 죽고 경제는 파탄에 직면했다.

대 가뭄 이후 1900년대 초부터 기상학자들은 인도양이 잘 보이는 기상 관측소에서 아라비아 해(海)를 주시하며 다가오는 폭풍을 관측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바다로부터 몰려오는 몬순 구름맞이 파티가 벌어진다고 한다.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해변을 따라 늘어서서 몬순의 폭풍을 기다리다가 검은 비구름이 해안에 도착하여 비를 내리기 시작하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축제를 시작한다고 한다.

몬순을 지배하는 것은 인드라 신이지만 몬순을 신격화한 신은 루드라(Rudra)이다.

그는 히말라야의 눈(雪)으로부터 무서운 폭풍을 몰고 내려온다.

“오, 천둥의 주재자인 루드라여, 강한 자 중의 강한 자여, 모든 불운의 위협에서 우리를 옮겨 주소서” 베다경전에 나오는 루드라를 칭송하는 말이다.

그는 성정은 사납지만 인간을 부드럽게 돌보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자비를 베푸는 수호신으로 찬양 받는다.

하늘의 신이 땅을 괴롭히는 뱀을 추방한다는 인드라 신화는 인도의 기상과 지형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몬순의 신 인드라는 인도양의 물기를 가득 머금고 인도대륙 위에 버티고 있는 가뭄의 신 큰 뱀을 물리친다.

이때 인도 북쪽의 히말라야 산맥에서 루드라가 찬 공기를 불어내려 강한 비구름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기상조건은 큰 비 외에도 천둥과 번개 현상을 동반하기에 현대 기상학 이론과도 부합되는 과학적인 신화라고 하겠다.

알렉산더 군대에게는 몬순의 비가 절망이었지만, 인도 사람들에게는 한 해도 걸러서는 안 될 생명이자 희망이다.

몬순을 가져오는 인드라는 인도인들에게 가장 훌륭한 신으로 추앙을 받고 있으며, 루드라는 수호신으로 찬양을 받고 있다.

이와 반대로 몬순의 비를 막으려 하는 큰 뱀 브리트라는 재앙을 가져다주는 저주받을 신이 되고 말았다.

뱀을 신성시하는 밀교(密敎)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세계 대부분의 신화나 종교에서는 뱀을 사악하고 교활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대자연 상생의 질서인 몬순을 막으려는 저의도 그렇지만, 뱀은 왠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불유쾌한 존재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