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살인' 이정근씨 29년만에 누명 벗어
'조작된 살인' 이정근씨 29년만에 누명 벗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1.1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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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같습니다. 이제야 다리 뻗고 잘 수 있게 됐네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군부에 의해 살인 누명을 뒤집어 쓴 채 힘든 삶을 살아온 이정근씨(63)에 대해 법원이 29년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광주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장병우)는 12일 5.18민주화운동 당시 항쟁에 참가했던 옆동네 대학생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씨에 대한 재심에서 "이번 사건은 혐의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음에도 국가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비인도적 사건"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80년 당시 판결서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의 조사 결과 등에 비춰볼 때 피고인이 공소 사실을 줄기차게 부인하고, 죄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했음에도 수사기관이 이씨를 20여일간 불법 구금한 채 가혹행위를 하고 이를 토대로 유죄를 인정한 점이 모두 인정된다"고 밝혔다.

판결 선고 후 재판장은 국가를 대신해 "모진 세월 마음 고생이 많으셨다"고 이씨를 위로한 뒤 "이제라도 마음 편히 평화롭게 여생을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5분 남짓 이어진 공판 결과, 무죄가 선고되자 숙연하던 법정에서는 정적을 깨는 박수 소리와 함께 "고맙습니다"는 말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가슴 졸이며 재판을 지켜보던 이씨의 아내와 네 딸은 너나없이 눈물을 흘렸다.

무죄 선고가 믿기지 않은 듯 잠시 고개를 떨구던 이씨도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맙다"는 흐느낌으로 29년간 묵은 한(恨)을 토해냈다. 진실규명에 앞장선 5.18행불자회와 재판부에 대해서는 "죽는 날까지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날 법정에는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꼬리표로 고통 받아온 이씨의 가족과 5.18 단체 관계자 , 80년 당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박문규씨(당시 18세.전남대 1년)의 유족 등 10여명이 이씨의 무죄 순간을 지켜봤다.

이씨는 1980년 5월 해남에서 무기를 탈취하고, 시위에 참여했다 붙잡혀 상무대 영창에서 포고령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느닷없이 살인범으로 내몰렸다. 같은 해 5월23일 고향인 영암 신북면에서 당시 전남대생이던 박씨를 자신을 포함해 10여명이 둔기로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의 가혹 행위에도 불구, 이씨는 혐의를 부인하며 석연찮은 목격자와의 대질신문을 요구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고, 결국 80년 6월 구속돼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1년 가까운 옥살이 끝에 이듬해 4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평범한 목수에서 '살인자'가 된 이씨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다 못해 고향마저 등진 채 고문후유증과 외롭게 싸워오다 지난 2006년 11월 정부에 진실 규명을 요구했고,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6월 이씨 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한 조작사건'으로 규정하고, 국가의 사과와 법원의 재심을 권고했다.

한편 사건당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박씨는 사망 29년만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지난 4월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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