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다시오월에
<특별기고> 다시오월에
  • 오희진 환경과 생명지키는 교사모임회장
  • 승인 2006.05.12 2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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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 거세고 황사도 더욱 짙어진 올 봄도 지나가고 있다.

늦봄 5월은 지나온 봄의 역정을 조감할 수 있는 봄의 꼭대기이다.

봄은 먼저 꽃을 피우며 이어달리기로 5월에 이르렀다.

하나의 꽃만으로 5월에 이르기에는 너무 숨이 차 각색각양 백화를 불러 개화의 때를 연결해 주었다.

그 중에 쉬이 보이는 것으로만 해도 산수유가 먼저 피고 개나리, 진달래로 이어져 산야를 물들였다.

그 꽃의 행진은 목련을 크게 피우고 벚꽃축제로 이어가며 고향의 복숭아꽃, 살구꽃을 젖히고 온 도시를 바람나게 했다.

그러나 꽃은 사람들의 바람만큼 오래 그 원색의 꽃잎을 나무에 매달 수는 없었다.

작은 잎사귀가 솟고 이내 연둣빛 버드나무를 따라 신록의 애기잎들이 천지산하에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꽃나무뿐이랴.그 무렵 먼 제주 유채꽃의 화사함은 곳곳에서 재현되고, 그 노랑꽃과 초록 대궁의 점묘화법 채색은 가히 꽃밭 잔치의 절정을 이루었다.

그 주변에 애기똥풀까지 노랑꽃은 봄에서 여름을 잇는 마지막 주자로 피어났다.

풀꽃뿐이랴.봄은 때로 백화만발 만화방창 일시에 산야를 물들이는 듯 보이지만 정작 꽃들에 희망을 거는 일은 그 후 전화하는 삶 자체다.

그것은 꽃만 말고 그 ‘등 뒤에 꽃피어 오는’ 푸르른 잎의 혁명의 전조를 눈치 채는 일이다.

각개 꽃나무가 개화의 시기를 조율하고 꽃색을 조화하여 피는 일이야말로 마침내 푸르른 숲에 이루려는 고투의 징후임을 배우는 일이다.

그리하여 봄 꽃의 오색에 취하고 그 예쁜 맵시와 분내에 미혹되는 일도 흑백 당위의 겨울로부터 일취월장하는 자유일테지만, 봄은 거기서 제 뜻을 멈출 수 없다.

그것을 이루려면 우리는 더 길게 숨을 들이쉴 수 있어야 한다.

봄은 그 절정인 5월의 광장에서 돌아보면 절로 아하, 탄성이 난다.

봄은 각양각색 꽃이라기보다 하나의 녹음에 이르고자 진보, 진화하는 꽃들의 기다림에 다름없지 않은가. 5월의 봄뿐이랴.그렇다면 사람도 어느새 그 봄을 닮고 쏙 5월을 빼닮아 봄이면 가슴이 두근대고 쓸어내리며 어디쯤 제 생명의 꽃을 피워왔는지 한 번은 돌아볼 일이다.

또는 한 송이 꽃이 아니라도 꽃 대궁 몇 번째 작은 꽃잎으로 피어났는지 돌아볼 일이다.

돌아니어도 늦봄처럼, 또는 늦봄에야 메마른 가지에서 꽃보다 기꺼운 잎을 틔우는 자귀나무 늦둥이 삶을 배워볼 일이다.

거기 더해 우리는 그 꽃이 피어나는데 바람은 얼마나 불어댔으며, 거센 바람이었는지 또박또박 기록할 수 있는 직필을 연마해야 한다.

나뭇가지마다 생기의 발아를 사산시키고자 처음부터 시샘이 난 북풍한설의 망령된 주문을 폐지시켜야 한다.

어여쁜 봉오리마다 꽃피어남의 탯줄을 차단하고자 녹슨 칼바람을 시나브로 일으키는 오래된 동굴을 투시해야한다.

그리고 하나의 꽃이 피면 금방 자생의 생명계가 열릴 것을 두려워하여 바다 건너 제국과 사막의 먼지까지 꼬드겨 검고 누른 고름의 바람에 부역하는 세력에 피토하듯 맞서야 한다.

그리하여 한 시절을 넘어 역사가 된 5월의 광장에서 다시 세운 깃발을 우러를 수 있다면.거기 다시 광풍을 몰아와 꽃잎이 흩날림에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거기 비로소 생명의 잎이 솟고 단 하나 숲의 푸름으로 일어서는 5월의 경이를 볼 수 있다면.‘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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