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귀하거든
아버지가 귀하거든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8.05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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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 태 종 <삶터교회 목사>

어느 마을에 훌륭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그 마을 촌장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촌장은 마을의 일을 아주 잘 처리하기도 했는데, 그의 자식 또한 아버지를 극진하게 위하고 떠받드는 효자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언뜻 보기에 그 집안은 그야말로 아무 걱정이 없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런 집안이 자기 마을에 있다는 것이 든든하기도 했고,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집에 가서 묻거나 도움을 청하고 받았는데, 촌장의 아들이 보기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어리석었습니다. 세상에서 자기 부모가 최고이며 제일이고, 다른 집의 사람들은 그저 못나고 못생긴 무지렁이처럼 보였던 겁니다.

촌장이 늙어 더 이상 아무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 촌장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웃거리며 이런 저런 일로 어쩔 수 없이 들락거리던 사람들의 발길이 하나씩 뜸하게 되더니 끝내는 아무도 그 집을 찾지 않았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근거도 분명치 않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젊은 촌장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누구도 모르는 부끄러운 이력을 갖고 있다는 말이며, 겉으로는 의젓했지만 사실은 뒤에 앉아 온갖 짓을 다 한 사람이라는 말이며,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그런 사람에게 속아서 존경도 하고 도움도 받았는데, 그런 일들이 부끄럽다는 이야기도 돌았습니다.

소문을 들은 젊은 촌장이 길길이 뛰었습니다. 이런 일은 그냥 둬서는 안 된다며 소문낸 사람을 찾겠다고 날마다 마을을 들쑤시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문이라는 것이 본디 그렇듯이 처음에 누가 그 말을 했는지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저 마을만 자꾸 뒤숭숭해지고 시끄러워졌고, 결과적으로 마을 사람들과 촌장의 집 사이의 심리적 거리만 더욱 멀어졌습니다.

촌장의 태도는 몹시 거칠어지기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업신여기던 마을 사람들을 적으로 여기고 툭하면 불러다 야단도 치고, 때로는 당하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짓거리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애초부터 일처리가 매끄럽지도 못했던 사람이 평정을 잃자 일은 더욱 엉망이 되었고, 그 집안의 넉넉하던 살림살이도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그럭저럭 깔끔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도 형편이 말이 아닐 정도로 어지러웠고, 마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도 뒤숭숭하고 시끄러운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곤 했습니다.

아들이 촌장이 된 다음 그저 들어앉아만 있던 노인이 뒤늦게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어쩔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어느 날 노인이 마을 어귀에 글 한 줄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그 글은'나는 아들을 낳긴 했지만 내가 낳았다고 내 아들은 아니라'는.

마을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 뒷이야기는 아무도 모릅니다. 전에 그 마을 사람들이 옛 촌장을 존경하고 그를 따랐다는 것은 그들이 못나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압니다.

존경받을 만한 사람을 존경할 줄 안다는 것 또한 소중한 일이라는 사실을 또한 모르지 않습니다. 더구나 내 아버지가 소중하면 남의 아버지를 또한 그에 버금가게 귀하게 여겨야 비로소 내 아버지의 이름에 부끄러운 흠집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압니다.

마을 사람들이 옛 촌장에게 돌아선 것이 아니라, 젊은 촌장의 어리석음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잃은 것이라는 사실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알 수 없는 한 가지 일이 있으니, 그것은 그런 상황의 마을에 사는 사람이라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잘 모른다는 사실, 오늘부터는 그걸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지 싶습니다.

여름을 즐기는 매미 소리가 싱그러운 아직은 시원한 아침, 곧 달구어질 햇살을 예상하며 그 더위를 어떻게 받아 모시면 좋을지를 아울러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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