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다음 날

참교육 칼럼

2007-12-28     충청타임즈
박 을 석 <전교조 충북지부 초등위원장>

대통령과 교육감 선거를 마친 다음날 아침이었다.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려고 서두를 꺼내자마자 대뜸 몇몇 아이들이 툭툭 내던졌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제 우리는 죽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들이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이제 우리는 죽었다"라고 외치다니. 아무리 단편적이고 사리 분별이 미숙한 아이들이라 해도, 또 비록 몇몇 아이들에 불과한 것이라 할지라도, 너무 극단적인 반응이지 않은가

선거를 앞두고 가끔씩 아이들과 관련 있는 교육 분야의 정책이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니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이들이 먼저 누가 대통령이 되면 어떻고, 또 누가 되면 저렇고 등등 나름대로 가진 느낌과 생각들로 입방아를 찧던 참이었다.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당연히 학교와 관련된 입시부담이 어떻게 될 것이냐라는 것이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이의 교육공약들은 단연 화젯거리였다. 국어, 국사 등 주요과목을 영어로 수업한다는 소식도 그랬고, 100개의 자립형 사립고, 150개 기숙형 공립고, 50개 마이스터고를 만들겠다는 소식도 그랬다.

"영어 못 하는 애들은 어떻게 하나요"

"그런 학교 못 들어가면 좋은 대학교 못 가나요"

"그런 학교 보내려고 집에서 난리칠 것 같아요."

아이들은 이런 투의 반응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고교 입시부활을 추진하겠다는 교육감 후보도 있다고 했더니 앞뒤 가리지 않고 "그런 분이 안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녀석도 있었다. "시험이 있어야 너희들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하잖아"라고 했더니 "학교서 시험 안 봐도 매일매일 학원다녀야 하고 시험도 봐야 해요"라고 항변했다. 더하여 "고교입시가 있으면 중학교 선생님들이 공부만 시킬 것이고, 학원이나 집에서도 시험대비 어쩌면서 매일 공부, 공부 그럴 것 아니에요"라고도 했다.

괜히 선거이야기를 꺼냈다 싶었다. 당장 세상이 끝날 것처럼 심각하게 굴다가도 돌아서면 헤헤거리고 장난치다가 야단이나 맞는 녀석들에게 교육정책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 한들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선거는 끝났고, 후보의 자격에서 대통령 당선인도 되고 교육감 당선인도 되었다. 지위와 권력을 가졌으니 내세웠던 말들을 아주 없었던 양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약들은 추진될 것이고 아이들은 그 앞에 맨몸으로 서있게 될 것이다.

"얘들아, 수 백 개씩 만든다는 그 유별난 학교나 고교입시 부활은 빠르면 너희들, 지금 초등 6학년부터 적용될 것 같구나"라고 했더니 한 녀석이 그런다.

"근데요, 선생님! 우리들한테 영향을 미치는 건데 왜 우리들 의견은 안 묻는 거죠 그 유엔아동 뭔가 하는 것도 있다고 했잖아요"

인권관련 수업시간에 유엔 아동권리 협약과 세계 인권 선언 이야기를 좀 했더니 그걸 기억하고 있는 아이다. 거칠지만 속임이 없고 잘 잊는 것 같지만 차곡차곡 쌓아두는 이런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을 믿으며 산다.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는데도 고교 평준화 때문에 학력이 하향평준화 되었다고 주장하는 어른들, 대학수능에서 최고 수준의 성적을 거두었다고 자랑하면서도 학력이 저하되었으니 고입 시험을 부활해야 한다는 자기모순과 자기기만의 어른들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