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당하고 볼기 200대

김중겸의 안심세상 웰빙치안

2007-11-28     충청타임즈
김 중 겸 <건양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

여성이 남자 형제나 친척 없이 남성과 접촉했다. 우리나라에서야 늘 있는 일이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율법을 어기는 행위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같이 처벌한다.

열아홉 소녀가 평소 알고 지내던 남자 고교생을 만났다. 그 학생이 찍은 자기 사진을 받기 위해서였다. 함께 승용차에 탔다. 7명의 남학생에게 바로 납치되었다. 성폭행 당했다.

법원은 소년들에게 가담 정도에 따라 판결했다. 2년에서 9년까지 형을 언도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소녀에게도 태형 90대를 선고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일이다.

피해자측에서 항고했다. 그러자 징역 6개월에 태형 200대로 형량을 늘렸다. 아울러 변호사의 자격을 박탈했다. 법정출입도 금지했다.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이유였다.

당혹스럽다. 형법과 형사소송법의 역사는 남녀평등 실현의 역사이기도 하다. 남성위주에서의 탈피였다. 문화가 다르면 죄와 벌도 달라진다. 하지만 문명세계에서는 부적절하지 싶다.

성폭력은 남성 지배욕의 산물이다. 여성을 소유하고 조종하려는 일그러진 의식의 산물이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약탈혼이 자리한다. 훔쳐오면 그걸로 끝이라는 인식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아니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극히 부자연한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 된 신화가 존재한다. 사라지지 않고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성폭력은 강간의 다른 이름이다. 가부장제 사회의 산물이다. 우선 성폭력은 여성이 유발한다는 전제가 살아 있다. 먼저 꼬리를 쳤지 않았느냐다. 여성의 잘못으로 몰아간다.

결코 그렇지 않다. 강간범은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다. 남성으로서의 열등감이다. 남성다움의 과시를 강간이라는 성적폭행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상습범이 대부분이다.

또 하나 잘못 된 강간신화(rape culture)가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당한다는 생각이다. 역시 아니다. 잘 아는 사람이 저지른다. 친인척이나 교제하는 남성이나 옛 애인인 경우가 많다.

여성의 '안돼요'라는 말을 승낙의 표시로 받아들이는 오류도 있다. 확실하게 거부하고 저항해야 한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을 조심하시라. 호시탐탐 노리는 악당은 늘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