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덕(明德)을 밝히고

시론

2022-10-06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을 원한다.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전 과정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얻는 전 과정이 인생으로, 욕망 충족을 위한 쉼 없는 움직임이 삶의 본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 욕망을 나쁜 것으로만 치부할 것은 아니다. 삶에 꼭 필요한 바른 욕망을 바르게 충족함으로써, 정신적으로는 편안하고 물질적으로는 부족함 없는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반드시 맑고 밝은 지혜를 키워나가야 한다. 지혜롭지 않다면 正思(정사) 正語(정어) 正行(정행), 즉 바른 생각과 올바른 말과 올바른 행동을 한다는 것이 쉽지만 않기 때문이다.

매 순간순간 우리의 삶으로 드러나는 올바른 말과 올바른 행동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의 0점 조정을 통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소아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을 떨쳐낼 때 비로소 가능하다. 지공무사한 본마음을 회복해야만 바른 생각이 가능하고, 바른 생각이 올바른 말과 올바른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음을 0점 조정함으로써 갓난아기 같은 순수의식인 지공무사한 본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선, 온갖 주견으로 가득한 우리 마음속의 기억 뭉치인 업식(業識)의 창고를 정리하고 정돈해야 한다. 업식의 창고를 정리정돈 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의 얼룩이나 먼지를 다 털어내는 것으로, 불교는 텅 빈 공(空), `나 없음'의 무아(無我) 내지 무심(無心)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기독교는 제 안의 온갖 주견을 비워내고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라고 강조하고 있다.

불교 및 기독교와 달리 겉으로 절대적 존재는 신(神)을 내세우지 않는 유교(儒敎)는 마음을 0점 조정함으로써, 지공무사한 본마음을 회복하는 일을 `명덕(明德) 즉, 내면의 밝은 덕을 밝히라고 말하고 있다. 명덕을 밝히라는 것은, 이는 유교의 핵심 가르침을 간직하고 있는 사서 즉,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중에서도 유학의 대의를 중점적으로 밝히고 있는 대학의 첫 문장에 나오는 3대 강령 중 첫 번째 강령이다. 대학의 3대 강령을 피력하고 있는 첫 문장은 “大學之道(대학지도) 在明明德(재명명덕) 在親民(재친민) 在止於至善(재지어지선)”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반야 지혜를 밝히는 것,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의 빛으로 충만해지는 일을 내면의 밝은 덕을 밝히는 `명명덕'이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텅 빈 무심을 깨달아 중생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보살이 되고, 제 안의 온갖 주견을 비워내고 팔이 안으로 굽는 일 없이 이웃을 제 몸처럼 돌보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을, 유교의 대학은 두 번째 강령을 통해 주변의 모든 사람과 상생(相生)하는 친구가 되라는 의미의 친민(親民)을 강조한다. 제 발등의 불을 끄고 난 후, 주변의 모든 이들이 발등의 불을 끌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돕는 `리더'가 되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보살 도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친민(親民)이다. 대학의 3대 강령 중 마지막은 止於至善(지어지선)으로, 자신의 이득에 흔들림 없이 언제나 지극한 선함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굳건한 삶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달리 홍수가 나도 걱정 없는 반석 위에 지은 집처럼, 매 순간순간 갈등함 없이 범사에 감사하는 굳건한 삶을 누리라는 의미다. 죽어 천당 극락에 가는 것보다, 살아서 이 땅에 하늘의 뜻을 활짝 꽃피우는 보살, 심령이 가난한 자, 도인 군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