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가에서2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2022-07-25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여름이 깊을수록 사람들은 무더위에 지쳐 간다.

여름 레저 같은 특별한 것을 제외하고는 가급적 야외 활동을 하지 않는다. 농사도 거의 일손을 놓고 쉬어 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도 연(蓮) 농사는 여름이 한창 바쁜 철이다.

물에서 하는 일인지라 더위를 식힐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연(蓮)을 통해 여름 풍광의 한 단면을 포착해 냈다.


연못가에서2(池上二絶)

小娃撑小艇(소왜탱소정) 조그만 예쁜 아가씨가 작은 배를 저어 가서는
偸採白蓮回(투채백연회) 흰 연꽃 몰래 따서 돌아가네
不解藏蹤跡(불해장종적) 자취를 감출 줄 몰라
浮萍一道開(부평일도개) 부평초 사이로 한 가닥 길을 내고 말았네

시인은 연못가에서 여름 더위를 피해 한가롭게 지내고 있던 차였다. 마침 그 연못에는 연꽃이 한창이었다.

한여름이면 연꽃은 뿌리는 물 아래 박은 채,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일부는 연밥을 달고 있기도 한다.

연꽃만이 보이던 고요한 연못에 갑자기 큰 움직임이 시인의 눈에 포착되었다. 작은 체구의 예쁜 아가씨가 자그마한 쪽배의 노를 저어 가서는 몰래 흰 연꽃을 따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아마도 시인은 그 아가씨가 연꽃의 주인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무엇 때문에 흰 연꽃이 필요했는지는 모르지만, 남의 것을 몰래 따 간 것은 분명하지만, 시인의 시선은 비난의 기색 없이 따뜻하기만 하다.

연꽃 연못에 왔다 간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었는데, 연못 안에 가득 떠 있는, 또 하나의 여름 풀 부평초 사이로 배 지나간 길이 남은 것은 어쩔 수 없었으니, 시인이 도리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여름은 한가로움과 정적을 동적인 장면을 이용해 그려낸 시인의 솜씨가 탄복을 자아낸다.

짜증 나고 지치기 쉬운 여름을 지내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평온한 마음으로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거기에 따뜻한 시선과 재치 있는 상상이 더해진다면, 여름 나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