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을 담다

生의 한가운데

2022-01-17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주말 오후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돌아오니 현관문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택배를 시킨 적이 없고 남편 또한 모르는 택배라고 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 집 물건이 아니었다. 택배 기사님의 착오로 옆 동으로 가야 할 택배가 잘못 배달된 것이었다.

어찌해야 할까? 잠깐 고민을 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택배 주인이 알아서 해결하겠지. 우리는 이 물건의 주인이 아니니 그대로 그 자리에 놓아두면 되겠지 싶어 손도 대지 않고 현관문을 닫고 들어왔다. 문을 닫고 들어온 이후 더는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생기지 않아 그대로 택배는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저녁 시간 아는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멀리 포항에서 과메기를 특별 주문해 상을 차렸으니 와서 함께 먹자는 내용이었다. 옳거니! 저녁에 뭘 먹나 고민하던 찰나 반가운 전화 한 통에 얼른 집을 나섰다. 그런데 오후에 보았던 택배 상자가 그대로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여졌다. 누군가의 귀한 택배 상자가 길을 잃고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이렇게 남의 현관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분명히 택배기사님은 택배 주인에게 `배송완료'라는 문자를 보냈을 테고 택배 주인은 도착하지 않는 물건을 기다리느라 목이 기린만큼은 늘어나 있을 것이었다. 예전에 내가 이런 경우를 겪은 적이 있기에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았다.

할 수 없이 택배 상자에 적힌 주소를 살펴 연락처를 알아냈다. 그러나 몇 번을 걸어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모르는 번호이니 스팸으로 오인해 받지 않는 듯했다. 점점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잘못 배송한 택배기사에게도 화가 났고, 연락이 닿지 않는 택배 주인에게도 짜증이 났다. 생각지도 않은 일에 귀한 나의 시간이 소비되고 있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결국, 문자 한 줄 남기고 택배는 그냥 둔 채 지인의 집으로 가 버렸다.

잘못 배송된 택배 때문에 저녁 초대 시간에 삼십 여분이나 늦어졌다. 이래저래 마음을 써서 그런지 입맛도 달아나고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젓가락을 깨작거리고 있는데 아까 그 택배 주인으로부터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택배는 무사히 잘 받았고 택배 오배송으로 연락을 해 준 이웃님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사하다는 장문의 메시지였다.

순간 좀 전에 있었던 부화가 슬며시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갑자기 식욕이 돋기 시작했고 소소한 수다의 시간도 시간 가는 줄 몰랐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밤하늘도 반짝반짝 더없이 예뻤다. 생각지도 않은 일에 이리저리 바쁘게 내 시간을 소비하며 받은 스트레스가 `감사하다'는 짧은 한마디에 눈 녹듯 사그라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소중한 물건을 꼭 주인에게 돌려주고픈 나의 마음을 상대방이 알아주고 따뜻한 문자 한 통을 보내준 진심 때문은 아닐까.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새해를 계획하고, 또 어떤 이는 자기발전을 위한 노력을 새해 소망으로 세우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올해 새삼 따뜻한 말 한마디를 많이 하는 해를 결심해 본다. 한마디 말 속에 체온을 실어 상대를 대하는 것. 저마다 체온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누군가를 대한다면 코로나로 더없이 냉랭하고 무거운 이 한 해도 가뿐히 뛰어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