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의 목소리…생명의 소중함

2007-07-31     충청타임즈
김 훈 일 주임신부 (초중성당)

늦은 봄 열린 창문으로 참새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왔다. 가만히 보니 아직 날개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어린 참새였다. 아마도 둥지를 떠나 이제 막 비상(飛上) 연습을 하는 새끼 참새인 것 같았다. 안쓰러운 마음도 들고 귀엽기도 해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어린 참새의 날갯짓을 보고 있노라니 어디선가 참새 두 마리가 들어와 마구 짖어대는 것이다.

이 어린 참새의 어미들인 것 같았다. 그 울음소리는 어린 새끼를 살려내려는 간절한 어미의 음성이었다. 새끼를 다시 창문으로 놓아주니 어설프지만 조금 날아 마당에 앉았다. 어미 참새들도 쏜살같이 날아 이 어린 참새의 첫 비행을 격려한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느님이 창조하신 생명의 신비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생명은 참 소중하고 아름답다. 이 작은 참새의 생명력에서도 그 아름다움이 끝없이 드러나고 있는데 사람의 생명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우리는 '자살자'라고 부른다. 자살은 신성에 대한 모독이다. 아주 이기적인 삶의 형태의 종말이다. 생명을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자살을 선택한다. 생명은 하느님의 영역이다. 우리가 스스로 생명을 얻은 것이 아니듯 인간은 생명을 자의든 타의든 죽일 수 없다. 그러니 자살은 고통스런 삶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선택할 수 없다. 생명은 누구든 소중하며 그 생명의 빛이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

그런데 자살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만은 아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1897년에 발표한 저서 '자살론(Le suicide)'에서 자살을 '사회적 현상'으로 이야기한다. 뒤르켐에 따른다면, 자살은 엄연히 사회 현상이며 자살원인 역시 사회적이라고 한다.

얼마 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사망원인 통계 결과'에 따르면 사망자 중 자살을 한 사람은 1만 1523명으로 인구 10만명 당 24.2명이었다.

1994년에는 자살률이 인구 10만명 당 10.5명에 그쳤지만,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19.9명으로 급증했다. 자살률은 이후 하락했지만, 2001년부터 다시 상승해 경기침체가 나타난 2003년에는 24명으로 늘어났다. 안타까운 사실은 20∼30대 사망률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이다.

이 통계를 놓고 볼 때 우리 사회 자살자들의 대부분은 사회적 타살자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환경이 그들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한 문화, 과도한 경쟁을 강요하는 문화, 패배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문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문화, 죽음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성장과 경쟁에 기반을 둔 사회 문화를 뒤돌아볼 때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죽음의 문화에 대해서 경고하고 계신다. 가톨릭교회는 사형제도의 폐지에서부터 낙태와 자살 등 죽음의 문화에 대한 경고와 회개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자살자의 증가를 막기 위해 사회적 노력을 시급히 실천해야 한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자살자들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오늘 내 주위에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이웃이 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그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