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보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2021-11-15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산(散)은 흩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정한 목적지 없이 가볍게 동네 고샅이나 둘레길 공원 같은 데를 잠깐 걷는 것을 산보(散步)라고 하는 듯하다. 이런 산보야 시도 때도 없이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와 가장 어울리는 시기로는 늦가을을 빼놓을 수 없다. 만산홍엽에 쌓인 낙엽, 차가워진 바람, 높은 하늘 등이 산보를 부르기에 충분할 테니 말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유한준(兪漢雋)도 늦가을 산보를 즐긴 사람 중 하나였다.



산보(散步)

搾取枯枝仍作杖 (착취고지잉작장) 죽은 나뭇가지 꺾으니 바로 지팡이가 되고
藉來寒葉卽爲筵 (자래한옆즉위연) 낙엽을 빌리니 곧 대자리가 되는구나
北園高處遙遙下 (북원고처요요하) 북쪽 동산 높은 곳 멀리서 내려와
南沼晴時緩緩前 (남소청시완완전) 남쪽 연못 맑은 때 천천히 앞으로 나오네
石上寒松看盡日 (석상한송간진일) 돌 위 차가운 소나무를 종일 보노라니
天邊歸雁聽餘年 (천변귀안청여년) 하늘가 돌아가는 기러기에서 남은 해 소리를 듣네
閑來錯被傍人道 (한래착피방인도) 한가히 지나가는 사람들 소리 잘못 들었나
不是潛郞是散仙 (불시잠랑시산선) 이 사람 떠도는 기인 잠랑이 아니라 자유로운 신선이라 하네

시인은 늦가을 어느 날 산속에서 여기저기를 걸으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산길을 걷다 보니 고사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가지를 꺾어 드니 큰스님 주장자가 부럽지 않다. 때가 때인지라 산속엔 온통 낙엽들이 널려 있는데, 이 낙엽들을 빌려 앉으니, 대청 마루 대자리에 전혀 손색이 없다. 산속의 소박한 것들이 시인에게는 세속의 귀한 것보다 더 좋아 보인다. 속세를 벗어난 시인의 자유로운 심리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시인이 산속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스스로 보기에 예사롭지 않은 면이 있다. 북쪽 동산 높은 곳 멀리서 오는 듯도 하고 남쪽 연못에서 맑은 날에 천천히 앞으로 오는 듯도 하다. 그러면서 시인은 주변을 관조한다. 돌 위의 소나무는 온종일 눈 밖에 벗어난 적이 없다. 귀로는 하늘 저편을 날고 있는 기러기 소리를 들으며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이런 시인의 모습을 지나가던 나그네가 한마디 하고 지나간다. 저 사람은 불우해서 산속을 떠도는 잠랑 같은 사람이 아니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는 신선이라고 하는 소리인데, 시인은 혹시 자기가 잘 못 들은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늦가을 길이면 어디든 좋을 것이다. 세상 잡사는 머리에서 지워 버리고 유유자적하며 걸어 보자. 그 길이 산속이라면 더 좋다. 죽은 나뭇가지 지팡이 삼고 걷다가 아무 데나 주저앉으면 땅에 쌓인 낙엽이 돗자리가 되어 준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가까운 산속을 여유롭게 걷는 것은 그 자체로 힐링이다.

/서원대 중국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