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주장

정치인 도백(道伯)의 지난 1년

2007-07-03     충청타임즈
남 경 훈<정치행정부장>

지난 2002년 12월 제 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유력주자 8명의 평전을 다룬 조성관 저(著) '위기의 한국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에는 정우택 지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문구가 있다. 지금은 변호사로 정계를 떠나 있는 이한동 전 자민련총재(전 국무총리)는 당시 정 의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정우택이는 경기고-서울대 법대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좋다. 경기고에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면 사람이 교만해지기 쉬웠을 것이다." 이 말은 정우택 의원이 비교적 일찍 출세했음에도 인간관계가 좋고 겸손한 태도를 갖출 수 있는 것은 당시 후기 대학인 성균관대를 나와 고시를 패스했기 때문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즉 좌절을 겪으면서도 되레 이것을 인간수양의 계기로 삼았다는 긍정적 평가다.

잘나가던 정지사는 이후 또 한번의 좌절을 겪는다. 탄핵열풍이 몰고온 17대 총선에서 3선의 꿈을 접은 것이다. 이후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으로 배를 갈아탄 정지사는 압도적인 지지로 고향 충북의 도백(道伯)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정치를 통해 단련된 은근과 끈기, 고집, 그리고 풍부한 인맥과 판단력이 밑바탕이 돼 지방선거에서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선거기간중에 정 지사가 강조한 것은 작지만 강한 충북 실현이었다. 이후 정 지사는 변화의 리더로 기대를 모았다.

이렇게 시작된 민선 4기도 1년의 시간을 보냈다. 정치인에서 행정가로 변신을 꾀한 한해였다고 볼 수 있다.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에게 쏟아지는 성과와 평가는 줄을 잇고 있다.

그만큼 관심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또 성과를 낼 만한 재료가 있었기 때문에 평가를 받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도지사 여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취임초부터 황제 취임식이 도마위에 오르더니 급기야는 인사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인사태풍은 도의회로 번지고 의회내부에서는 같은 당인 한나라당 의원들간에 대선경선 과정의 갈등까지 겹치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정지사는 원칙에 의해 공정하게 이뤄진 인사이지만 이렇게까지 논란이 확대되고 도민이 화합하지 못하는 사태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앞으로 이런 우를 범하지 않겠다고 재차 다짐도 했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사람이 자기 사람을 임명하는 엽관주의(獵官主義)가 정실 보은인사로 뒤바뀌어 혼쭐이 난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다. 타 시·도의 경우 도지사 인사권한에 의해 임명되는 자리가 더욱 많기 때문이다. 정치인 도지사로 1년 동안의 이런 경험은 앞으로 남은 3년 동안 약이 될 것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정 지사가 정치인으로 힘을 발휘한 것은 경제분야다. 경제특별도를 기치로 내걸고 추진한 하이닉스 청주공장 증설 유치 성공은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그동안 행정관료 도지사들의 안주하던 스타일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이는 싸움이 시작되면 이겨야한다는 승부근성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또 기업전반에 걸친 분위기를 쇄신하고 직접 현장을 뛰었다. 지사가 직접 움직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하는 의미가 달랐다.

또하나의 성과는 정부예산 2조원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행시출신에다 기획원의 요직을 지낸 정 지사의 과거 인맥관리의 우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충북의 재정확보에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우선 2년차 첫 업무를 시작하는 2일만해도 혁신도시내 이전공공기관 분산배치를 강력히 요구하는 제천지역민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역균형발전과 갈등구조의 해결이 남은 과제가 되고 있다. '잘사는 충북 행복한 도민'이라는 도정 목표는 갈등을 극복해 함께 골고루 잘살고 행복해질 수 있을 때 그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