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노래

生의 한가운데

2021-05-05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놀라는 마음을 조용히 감춘다. 방금 스치듯 남편에게서 콧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한 편의 긴장을 놓지 못하고 살던 차 그 노랫소리는 평원에 다다른 기분만큼이나 흡족했다. 그러나 못 들은 척 귀를 닫았다. 지난 몇 년 사이에 큰 병원을 들락거리며 예의 주시하던 남편의 몸 상태를 보게 된 순간이어서였다.

콧노래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때그때 심리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불안과 초초감이 있다면 콧노래는 절대 흘러나올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지금 남편은 어느 정도 스스로 안정감에 취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살짝 엿본 마음을 들키기 미안해서 조용히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전과 달리 집안이 조용해졌다. 아이들도 모두 제 갈 곳을 떠나고 둘만 남게 된 집이 넓은 느낌이다. 그동안 조금씩 변한 것들이 많아졌다. 일상적인 화두도, 묻어나는 세월만큼이나 오랜 것에서부터, 그리고 이제는 눈으로 느낄 만큼 서로의 건강에 대해 염려가 늘어난 길목에 서 있다. 작은 표정 하나만으로도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해진 시기가 된 것이다. 서리 내린 늦가을 들녘에 마주 앉은 기분이 이런 건가 보다.

미움도 원망도 희미해진 때에 이르렀다. 그토록 물러나지 않으려고 팽팽하던 남편의 혈기가 어디로 갔는지 차분해진 모습이다. 자신의 의지에 비해 조금 뒤처져 가는 걸음이 문득 안쓰럽다. 그런 남편에게서 흘러나오는 콧노래가 어인 일로 이렇게 달리 들리는지 나 스스로도 놀라고야 만 것이다. 한평생을 마주하며 살아온 세월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그 앞에 어른거린다.

지나온 시간이 훌쩍 뛰어올라 내 마음을 흔들고 있다. 아직 함께 해야 할 남은여생, 서로의 건강이 원만하길 바라는 마음을 맑은 하늘에 몽글한 구름으로 수를 놓는다. 부부는 그런 것이었다. 시작이 언제였나 싶게 화살처럼 사라지고 이제는 종착역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손잡은 형상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서 듣는 콧노래가 잠시나마 위안이 되고 있으니 어쩌면 그것은 반전의 기회인지도 모른다.

몇 년 사이에 지병이 생겨나 먹는 약의 가짓수가 흠씬 늘어났다. 그렇게 석양을 머리에 이고 가는 남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조심스럽다. 내 모습도 뒤처질세라 따라가는 형상이지만 서로의 흥얼대는 콧노래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목청껏 소리 내어 부를 상황은 아니어도 내면의 평안함을 스스로 확인시켜주는 짧은 순간인 만큼 근심이 줄어드는 모양새여서 그렇다. 음정과 박자에 연연하지 않고 부르는 콧노래가 어쩌면 자기만의 명곡이 아닐까 싶다.

늙고 약해져 가는 몸, 너나 할 것 없이 피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 그래도 어쩌랴. 나름 방향을 우회하고 싶어졌다. 문득 주시한 남편의 콧노래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고나 할까. 희망을 잃지 않고 간다는 증거였다. 그 노래는 서로를 안심시켜주는 하나의 묘약이 되고 있었다. 후로 살피는 버릇이 하나 더 늘어났다. 은근히 남편에게서 또 어떤 콧노래가 흘러나올지 기대를 한다. 아직은 가족이라는 반원에서 이탈하면 안 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