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수출 규제

데스크의 주장

2021-02-08     이재경 기자
이재경

 

“정부의 대한(對韓) 보복 조치가 오히려 기업들을 망하게 하고 있다.”

일본 현지의 반도체 기업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7일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인용해 `한국이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작된 이후 반도체 소재 국산화에 나선 결과 일본의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난해 한국에 대한 일본의 불화수소 수출은 전년 대비 75% 줄었다”며 “특히 수출 규제 강화 전과 비교하면 1/10 토막이 났다”고 전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수출 규제 이전까지) 일본 기업에 의존하던 불화수소를 한국의 소재 기업들이 대량 생산해 삼성전자 등에 공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반도체용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일본 기업인 스텔라케미화와 모리타화학공업은 연간 60억엔 규모의 매출이 감소하는 타격을 받았다. 스텔라케미화의 2019 회계연도 반도체·디스플레이용 불화수소 출하는 전년 대비 26% 감소했고, 지난해 4~9월 출하도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국내에 진출한 일본의 반도체장비 회사들도 타격을 입고 있다. 일본의 규제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부단한 기술개발에 나선 한국의 반도체장비 회사들이 두각을 보이면서 일본의 장비회사들의 수주 물량이 줄어들고 있다.

실제 국내에 진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반도체장비를 납품하고 있는 일본의 A사는 고객사로부터의 수주 물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회사의 경우 반도체 검사 장비인 메모리 웨이퍼 테스터의 2018년까지 국내 점유율이 50%를 차지했는데 최근 2019년부터 최근까지 급격히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

주 고객사인 삼성전자 등이 한국의 반도체 장비 회사들에 대한 발주 물량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A사와 함께 메모리 웨이퍼 테스터 국내 시장을 양분했던 Y사는 지난 4, 5일 이틀간 연속으로 삼성전자로부터 1200억원대 규모의 장비 공급 계약을 따냈다. 이 규모는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 두 배를 뛰어넘는 수치다. 삼성은 앞서 지난해 8월엔 이 회사의 주식 960만주를 취득해 지분 12.1%를 보유한 대주주가 됐다. 당시 출자액은 473억원에 달한다. 2019년 현실화한 일본 같은 교역 상대국들의 보복이나 규제 조치에 대비해 안정적인 공급망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주식 시장에서 Y사 덕분에 뜻밖의 큰 수익을 본 사람들도 있다. 5일 삼성전자로부터의 대형 공급 계약 소식에 Y사는 이날 하루에만 주가가 20%나 급등했다. 국산 장비소재부품사의 주식을 사놓았던 `애국 투자자'들에게 커다란 선물을 준 것이다.

일본의 보복이 되레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첨단 소재장비산업의 체력을 튼튼하게 하는 `반전'을 가져다 준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이 마냥 즐길만한 일은 아니다. 지난달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 일본과의 대치(?) 상황에 대해 “곤혹스럽다”고 잘라 말했다. 나아가 `2015년의 정부간 합의가 공식적이었으며 (강제집행 방식의) 배상 판결 실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다분히 정치적인 발언이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화답을 하지 않고 있다. 한국이 원하는 것은 결코 물질적 보상이 아니다. 진정성이 곁들인 사과와 독도 관련 도발과 교과서 왜곡 중단 등 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다. 새로 출범한 스가 내각이 이를 모를 리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