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과 코로나19 극복

열린광장

2021-01-28     경종호 충북북부보훈지청 보훈과장
경종호

 

우리는 가장의 실직이나 사업실패로 많은 빚을 지고 가족이 동반자살했다는 신문기사를 종종 접하곤 한다.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국가의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게 되는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국가들을 지난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01년 아르헨티나, 2010년 그리스 등 유럽국가 부채위기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위기가 있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요청이다. 당시 대한민국의 부채를 갚기 위해 국민들이 자신이 소유한 금을 자발적으로 내어 놓는 금 모으기 운동이 일어났고, 전국적으로 351만명이 참여하여 21억 7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약 227톤의 금을 모았다. 이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지금으로부터 114년 전인 1907년에 국채보상운동이 있었다. 일본은 대한제국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기 위해 1905년 대한제국의 문란한 화폐를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화폐정리채 3백만원을 빌리게 하였고 1906년 통감부 설치 이후 교육제도의 개선, 금융기관의 확장정리 등 각종 명목으로 차관을 들여오게 한 결과, 1907년 초 대한제국 정부는 1300만원에 달하는 채무를 지게 되었다. 이는 대한제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 금액으로 당시의 국가재정으로는 갚을 수 없는 금액이었다.

이에 전 국민이 주권 수호운동으로 전개한 것이 국채를 상환하여 국권을 회복하자는 국채보상운동으로 1907년 2월21일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국채 1300만원 보상취지문'을 보면 그 뜻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국채를 갚을 한 가지 방법이 있으니 그다지 힘이 들지 않고 재산을 축내지 않고서도 돈을 모으는 방도인 것이다. 2천만 동포가 석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대금을 모은다면 거의 1300만원이 될 것이니…아 2천만 가운데 조금이라도 애국사상이 있는 이가 있다면 이를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29일 대구에서 열린 대동광문회 특별회에서 서상돈 선생의 발의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상인, 신지식인, 유림, 노동자, 인력거꾼·기생·백정과 같은 하층민, 부녀자 등 각계각층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범국민적 운동으로 전개되었으며,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으로 이어져 외환 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한 기록물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에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국채보상운동과 금모으기 운동에서 보듯이 우리 국민에게는 국난 극복의 저력이 있고 국가위기에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범국민운동으로 나타났으며 현재는 K-방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는 팬데믹 상황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비록 국민의 협조로 K-방역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시행하는 것이 정부 등 정책담당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1월29일을 맞이하여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