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슬포슬

미주알 고주알

2020-10-13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안승현

 

장마 전에 캐 두었던 사프란을 심을 자리를 마련한다. 겨울 초입에 꽃을 피워 새하얀 눈과 조화를 이루는, 3개의 꽃술을 단 사프란. 사프란이 있었던 자리에는 비단풀, 쇠비름, 지칭개 등 빈자리를 서로 차지하겠다며 한 자리씩 잡았다. 원주인이 다시 입주하겠다니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내줘야겠다.

호미를 잡고 과감히 캐어낸다. 매년 사프란이 자리했던 자리라 연작의 피해가 없도록 흙 관리를 해왔다. 부엽토와 잘 숙성된 퇴비가 적절히 더해지면서 흙이 포슬포슬하다. 손으로 파도 될 정도로 흙이 보드랍다. 그 사이 많은 벌레가 기거하며 왕래한다. 식재 깊이는 구근의 2.5배 정도, 흙이 포슬포슬하여 바로 길량이들이 변을 묻다 보니 좀 더 깊게 심는다. 매년 자구가 늘어 촘촘히 심어도 부족해 텃밭으로 상당수가 이주했다. 예상대로 이주한 터까지 길량이들이 난리를 쳐 놨다. 흙을 파 헤집고 뒹굴고 뛰어다닌 게 토끼도 다녀간 듯하다.

수선화와 튤립은 더욱 깊숙하게 자리한다. 혹독한 겨울을 땅속에서 이겨내야 하니 화분에 심는 깊이보다 월등히 깊다. 그러다 보니 배수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흙 관리에 더 신경을 쓴다. 사토질을 더하고 부엽토를 많이 섞어 뒤집어 만든다. 수선화가 들어간 자리는 포근한 쉼터가 되었다. 한겨울 포근한 솜이불을 두껍게 덮었다. 갓 탄 솜이불이다.

아이리스 분식작업이다. 긴 장마에 뿌리가 무르거나 썩어 없어질 만도 했는데, 세력을 넓혀 캐기가 어렵다. 삽 대신 곡괭이로 땅에서 이탈시킨다. 한 뼘도 안 되는 뿌리들이 일제히 땅을 잡고 있다. 뿌리가 짧고 약해도 워낙 많은 양이 엉겨서 땅을 잡고 있다 보니 곡괭이 자루가 부러졌다. 힘겹게 캐 비늘구근을 하나하나 원뿌리에서 떼어낸다. 한 뿌리로 시작했는데 심어놓고 나니 장관이다. 보잘것없는 뿌리가 땅에 의지하고 잎을 떼어낸 비늘은 겨우내 한파를 이겨낸다.

한파를 이겨낼 힘은 보슬보슬한 흙이다. 겨우내 양분이 될 만한 흙이다. 그 흙 위에 알몸을 드러내어 자리를 잡는다.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놓고 선루프를 열고 눈발을 맞으며 달리는 기분을 아이리스는 안다. 또 하나 눈을 즐기는 녀석, 봄동이다. 겨우내 내리는 눈을 즐기며 더욱 맛있어지는 봄동이 싹이 틔었다. 겨우내 솎아 전이나 겉절이를 해 먹고도 남을 만큼이다. 특별하게 모판에 채울 흙을 준비해 두었다가 흩뿌렸는데 앞다퉈 싹을 틔웠다. 봄동과 함께 눈을 반기며 감칠맛을 더해갈 시금치가 꽃대를 올렸다. 그러건 말건 곁순을 따서 끓인다. 맛이 달다. 아주까리 나물에 번갈아가며 젓가락과 숟가락이 오고 가니 밥 한 공기가 뚝딱 없어졌다. 갓 따내 묻혀낸 아주까리 나물은 묵나물 맛을 낸다. 포슬포슬한 밥알이 오물오물 입안에서 향연이다.

파종한 양파는 배양토에서 길쯤하게 자란다. 힘없이 쓰러져 있는 실오라기같이 여린 순에서 어른 주먹보다 큰 양파로 비대해지는지, 보면 볼수록 신기할 따름이다. 이 녀석도 흙에서 한겨울을 지낼 준비를 한다. 한파를 이겨낼 이 여린 녀석을 보니 안쓰럽다. 좀 더 추워지면 정식하고 볏짚으로 멀칭 해주어야겠다. 그러면 지렁이를 비롯한 많은 벌레들과 동거하며 심심치 않을 터이니.

서늘한 기운에 잎들이 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하며, 곧 이른 녀석들은 떨구어 내며 내려놓을 것이다. 그런 시기에 내년을 준비한다. 성성한 서릿발을 매번 경험했기에 더 보드랍고 따스한 흙을 만들고 씨앗을 파종한다. 미리 추위를 겪어보고 내성을 강화하며 월동을 준비한다. 그러려면 몸을 기댈 흙만이라도 온기가 있어야겠다. 많은 공기층이 있어 무수한 벌레들이 잘 살 수 있는, 포슬포슬한 흙이다. 화살나무 끄트머리부터 아름다운 색이 물들어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