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팔 할은 `선배들의 글'이었다

노영원이 본 記者동네

2020-07-30     노영원 현대HCN충북방송 대표
노영원

 

#저는 학창 시절 국어 시간을 제외하면 시(詩)를 일부러 읽거나 시집을 구매한 적이 없습니다.

도종환 국회의원이 초선 시절 청주의 한 식당에서 시인인 이재표 전 기자와 셋이 식사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두 시인이 시에 대해 주고받는 대화가 너무 지루해 자꾸 다른 화제로 돌리려고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친일 이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불리는 미당 서정주의 `자화상'을 최근에 읽은 뒤 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자화상에 실린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라는 문장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현재는 기자가 아닌 경영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기자를 꿈꾸게 하고, 재주는 없지만 글을 쉽게 써야 한다고 노력하게 만든 것은 선배들의 글이었습니다. 자화상의 글귀를 빌린다면 “나를 키운 팔 할은 선배들의 글”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대학에 재학하던 시절 유태종 선배가 쓴 `증평출장소의 기형적인 행정' 기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 선배의 기사는 괴산군도 아니고 증평군도 아닌 출장소라는 어정쩡한 증평의 현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신문기사는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써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유 선배 기사가 모범이 된다고 봅니다.

또 안남영 선배의 경우 도청 중앙기자실 옆 책상에서 6년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꼼꼼한 취재방식이었습니다.특히 문장까지 세밀하게 다듬고 문법에 대해 치열하게 공부하는 모습은 후배들의 귀감이 될 것입니다.

유 선배와 안 선배가 이제 취재 현장을 떠나면서 더 이상 기자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현직 선배 중엔 한덕현 선배와 함우석 선배의 글에서 제가 넘을 수 없는 힘을 느끼게 됩니다.

한 선배의 칼럼은 지역 현안에 대해 에두르는 법이 없이 곧바로 핵심을 찌르는 것이 장점입니다.

제가 일부러 한 선배의 칼럼을 읽기 위해 신문 구독을 신청할 정도로 그의 글은 `사이다 발언' 같은 맛이 있습니다.

함 선배는 기자 출신 작가인 김훈의 글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고 단문으로만 이뤄진 문장은 오랜 글쓰기 내공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최근 지리산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긴 글을 그렇게 짧은 단문으로 쓸 수 있구나”라고 감탄했습니다.

충북을 대표하는 건설회사인 `원건설' 김민호 회장과 사석에서 만났을 때 `직지'를 세상에 처음 알린 임병무 선배의 글에 대해 칭찬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분의 아들인 임선우 기자에게 김 회장의 칭찬을 전하면서 기자의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대한일보 폐간을 다룬 `신문은 죽어서도 말한다'는 책을 통해 폐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글로 억울한 사연을 전하는 기자들의 모습을 봤습니다.

기자는 말이 아닌 글로 말해야 하기에 시간에 쫓길 때가 많지만 문장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