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점포들 … 인적은 끊기고 노후된 건물은 흉물 전락

프로/ 개발지연 15년… 도심 폐허로 변한 청주 복대시장 건물주들 공사추진 시행사말만 믿고 웃돈에 점포 비워 대부분 고령자 … 생활고로 빚쟁이 전락 극단적 선택도 청주시 시행사에 사업기간 만료 때마다 착공 기한 연장 주민들 “생활고 피해에도 해마다 허가” 깊은 한숨만

2020-05-07     오영근 기자
아파트

 

청주 도심 중심부에서 지난 10여년 사이 슬럼가처럼 폐허로 변한 곳이 있다.

청주시 흥덕구 공단5거리에서 옛 서부경찰서 방향 도로 좌측편 300m 구간에 위치한 복대시장이다.

상가 150개를 갖춘 청주 서부권 대표적 재래시장으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성업을 이뤘다. 그러나 15년가량 지난 현재, 이곳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6차선 대로변에 3층 건물마다 2, 3층 점포 대부분이 텅 비어 있다. 뒷골목으로 들어가자 이곳이 시장이었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과일과 그릇가게, 순댓집 등 식당 몇 개와 노점상 몇몇이 시장 명맥을 지키고 있다.

골목길 양쪽 점포마다 셔터문이 굳게 닫혀 있다. 간판은 삭을 대로 삭았고 건물은 죄다 노후화가 진행 중이다.

지하실은 영락없이 물에 잠겨 있다. 한낮에도 인적이 드물다 보니 범죄마저 우려된다.

이곳 150여개 점포 중 현재 영업을 하는 곳은 20개 남짓이다.

15년째 과일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동철씨(80)는 “10년 전쯤만 해도 하루 70~80만원을 벌었는데 요즘에 몇 만원어치 팔기가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이곳이 이렇게 폐허로 변한 것은 대략 12년 전인 지난 2008년, 개발바람이 불면서부터다.

복대시장과 그 일원 125필지 3만3000여㎡(1만여평)부지에 49층 주상복합아파트를 건립한다는 구상이었다.

도내 재래시장 중 첫 민간 개발방식이었지만 토지주와 건물주(이하 주민)들은 이 사업을 반겼다.

2011년 동우건설이 시작한 이 사업은 5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2016년 ㈜창진주택으로 사업권이 넘어갔다.

새 시행사는 주민 95%의 토지사용 승낙을 받아내는 등 사업 재추진에 물꼬를 텄다.

주민들은 곧 토지매매 대금이 지급되고 공사가 본격화된다는 시행사 말을 믿고 건물을 비우기 위해 웃돈까지 줘가며 점포 세입자들을 내보냈다. 상가 점포가 모두 비게 된 이유다. 그러나 그 뒤로도 아파트 건축사업은 지지부진했다.

시행사는 곧 사업에 착수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토지보상을 미뤘고 청주시는 그런 시행사에 사업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착공 기한을 연장해 주었다.

문제는 이러는 사이 주민들 상당수가 말 못할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곳은 본래 문화 유씨와 고령 신씨의 집성촌이었다. 대부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 덕택에 남부럽지 않은 재력을 갖고 있었다. 적게는 몇 개에서 스무 개 가까이 점포와 건물, 땅을 보유한 재력가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령의 나이에 수억원씩의 금융부채에 시달리는 `빚쟁이'로 전락했다.

10년 넘게 건물 점포를 비운 탓에 임대료 수입이 끊겼고 부동산 담보대출로 생활비를 충당해온 것이다.

7개 점포를 보유한 상가주 유모씨(68)는 한 달 400~500만원의 임대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세입자를 내 보낸뒤 지금은 2개 점포에서 월 150만원 임대료를 받는다. 유씨의 금융부채는 4억원, 이자를 내고 나면 생활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유씨는 “점포에 세입자를 다시 구하려 해도 상권이 죽어 있다 보니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며 “부동산 재산이 있어도 쓸모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유모씨(54)는 “이곳 100여명의 주민 중 80~90%가 부동산 근저당 담보대출로 생긴 빚에 허덕이고 있다”며 “10년 넘는 세월 속에 주민 상당수가 70~80대 고령이 됐고 기약 없이 재개발만 기다리다 작고한 분이 4명이나 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한 주민도 있다고 말한다. 한의원을 했던 한 주민(당시 70세)의 경우다. 대로변 3층 상가 건물주였으나 임대를 주지 못해 은행 돈을 썼고 빚을 내 빚을 갚는 신세를 비관해 지난 1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주민 신모씨(69)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재개발에 속아 다 날리게 됐다”며 “청주시는 왜 이런 사업을 해마다 계속해서 연장해 주는지 알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영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