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일미음

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2019-09-18     연지민 기자

 

서 정 주

추일미음

 

서정주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맨드라미 촉계는 붉은 물이 들었지만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안해박은 뜰 안에 큰 주먹처럼 놓이고
타래박은 뜰 밖에 작은 주먹처럼 놓였다만
내 주먹은 어디다가 놓았으면 좋을꼬

# 문장 하나로도 가을이 느껴지는 시입니다. 뜨거운 여름 햇볕의 잔영을 안고 가을이 깊어갑니다. 푸릇하던 감나무 잎이 설핏 붉은빛을 드러내고, 마당 가 맨드라미는 붉음을 더해갑니다. 담장을 사이로 집 안쪽과 바깥쪽에는 조롱조롱 크고 작은 박이 열립니다. 소리없이 영글어가는 저 들녘도 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