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無心)하면 못할 일이 없다

사유의 숲

2019-06-19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귀룡

 

어떤 화가가 성화(聖 )를 그릴 때의 일화가 있다. 예수의 얼굴 모델이 될 만한 인물을 찾다가 합창단 소년의 얼굴에서 천사의 표정을 읽고 그 소년을 모델 삼아 예수를 그렸다. 예수와 열한 제자의 얼굴을 그렸으나 배신의 상징인 유다를 그리지 못했다. 길을 가다 우연히 삶에 찌든 일그러진 얼굴의 거지(또는 사형선고 직전의 악당)를 보고 그를 모델로 유다를 그렸다. 그림을 다 그릴 즈음 그 거지가 다빈치에게 말하길 옛날에도 화가께서 자기 얼굴을 모델 삼아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순진무구한 심성을 가질 수도 있고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겪어 오염된 심성의 사람도 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 사람에게는 양면적 심성이 있다. 곧 사람은 성인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최고의 악당이 될 가능성도 갖고 있다.

인간은 오염되기 쉽다. 곧 가만히 놔두면 오염되게 되어 있다. 성인이 될 심성보다 악당의 심성이 발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종교철학을 가르치다 보면 타락하기는 쉬워도 구원을 받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빠져나가는 것만큼 어렵다는 걸 느낀다. 창세기에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는 건 순식간이다. 곧 순식간에 아주 쉽게 타락한다. 그런데 예수는 자신과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 사탄의 세 가지 시험을 거치고, 죽음의 공포를 극복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 죄에 빠지는 건 쉽지만 죄로부터의 구원은 멀고도 멀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평범한 인간의 삶도 오염되기는 쉬워도 오염으로부터 정화되는 건 어렵다. 순진무구한 천사 같은 심성이 세상의 온갖 고뇌와 탐욕, 분노, 증오, 질시로 일그러진 심성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지만 그 역은 쉽지 않다. 화를 내기는 쉬워도 한참이 지나야 그 화가 가라앉을 수 있으며, 니코틴,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건 쉽지만 그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길거리나 식당에서 아이들을 보면 한없이 귀엽다. 손자 볼 나이가 되면 아이들이 귀여워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은 다 예쁘다. 아이들은 아무 생각이 없다. 순진무구한 표정에 다른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이용한다는 생각은 못할 것 같은 얼굴이다. 자는 모습을 보노라면 천사가 따로 없다. 철이 없는 아이들은 어른들에게는 휴식을 가져다준다.

순진무구한 천사의 표정이었던 철없는 아이들이 눈동자를 굴리며 이해관계를 따지는 사람으로 바뀐다. 이미 삶의 무게에 찌들어 머리가 복잡한 어른들과 만나는 건 아이들과 만나는 것과 달리 피곤하다. 항상 아이처럼 생각하면서 철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이가 들어서도 아이의 표정을 간직하고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아이들은 천사의 표정과 심성을 갖고 있지만 그걸 지켜낼 수 있는 힘은 없다. 시련을 겪으면 오염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의 심성은 때 묻지 않았지만 세상 풍파를 이겨낸 결과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직 취약하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한 심성으로 철없이 살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다.

철없는 선배가 있다. 남들이 계산 속에서 못하는 말도 거침없이 한다. 그래서 곤혹스러운 경우가 가끔 있었다. 가끔 곤혹스럽기도 하지만 만나고 나면 뒤끝이 좋다. 황당해서 실소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위 말하는 잔머리도 없고, 뒷담화도 하지 않는 편이다. 좋기는 하지만 철이 없는 건 맞다. 나이가 나보다 많기는 하지만 가끔 동생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철이 없다. 최대한 좋게 평가해주면 심성이 비교적 덜 오염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선배가 강단을 떠난다. 지금보다 조금 더 철이 없어져서 무심(無心)하게 되기를 바란다. 무심하면 하지 못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