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2019-04-15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나에게는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이 있다. 가족들이 생각하는 나와 친구들이 생각하는 나, 동료에게 인식되는 나는 같지만 서로 다른 모습들이 존재한다. 20대에는 그런 내 모습이 혼란스러웠다. 진정한 나가 누구인지 규정하고 싶었으며 다른 모습으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 같아 나 자신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점점 들어짐에 따라 이러저러한 내 모습들이 모두 나임을 알아버렸다. 누구에게 비쳐지냐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고 같은 사람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 시선이 신경 쓰여 나는 더욱 나 자신을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책 선물을 받았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아이의 동화책이나 그림책만 달고 사는 나에게 친구는 감성이 메말라 보인다며 가볍게 읽으라는 메시지와 함께 `쇼코의 미소'(최은영 저·문학동네·2016) 책을 보냈다.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생각해보면 그 대답에 마음은 담지 못했었다. 책을 들고 잠시 감동을 느끼곤 저만치 내려놓았다. 언젠가 읽어야지 목록에 한 권이 더 추가된 딱 그 정도의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2019 책 읽는 진천'의 후보도서란다. 자세히 뜯어 읽어보니 쟁쟁한 소설가들의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호기심이 작동되기 시작됐다. 읽어 보고 싶었다. 과연 나는 흐름이 끊기지 않게 다 읽을 수 있을까라는 염려가 있었지만 도대체 어떤 책 이기에라는 궁금증이 더 컸다.

이 책은 7개의 단편소설을 묶어 놓았다. 중간 중간 쉬다가 읽어도 좋다. 오히려 한 편 한 편 읽다가 내려놓고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주는 것이 더욱 좋다. 쇼코의 미소를 설명하는 구절에서 나는 멈칫했다. 예의 밝은 표정, 애써 웃는 얼굴 그러나 속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쇼코의 미소에서 나는 나의 얼굴을 보았다. 밝고 희망찬 이야기로 가득한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와 자살과 일탈을 일삼는 내용으로 소유에게 보내는 편지는 모두 쇼코 본인의 모습인 것처럼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내가 떠오른 것이다. 작가는 에둘러 사람은 모두 여러 개의 모습을 가지고 산다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작가는 7개의 이야기에 끊임없이 사람들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과거를 애써 부정하는 사람, 현실을 무시하는 사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가족으로부터 나를 격리하는 사람 등을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먹먹하다. 오랜만에 진득하니 앉아 책을 읽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던 20대의 나를 만났고, 타인의 감정을 애써 무시하고 싶었던 10대의 나를 만났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늘 적당한 거리를 중요시했던 내가 이러저러한 세월을 거치고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쇼코처럼, 소유처럼 혹은 응웬 아줌마처럼 산다. 그렇게 더욱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