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 민낯 `간병 범죄' 사회문제화

청주서 치매 앓던 부친 살해한 아들 스스로 목숨 끊어 부양의무자, 장기간 간병 부담·생활고에 `극단적 선택' 포괄 간호서비스 확대 등 사회시스템 구축 필요성 대두

2019-02-21     조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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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병(病)에 효자(孝子) 없다.” 지병을 앓는 노부모 수발에 지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적잖다. `간병 범죄'. 행위자 상당수는 장기간 간병에 한계를 절감, 돌이킬 수 없는 패륜을 저지르고 있다.

# 사랑하는 부모, 차라리 내 손으로 … 엇나간 효심

지난 20일 오후 8시20분쯤 청주시 서원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A씨(49)가 피를 흘린 채 쓰려져 있는 것을 행인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머리 등을 크게 다친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숨진 A씨는 발견 장소 인근 아파트에서 아버지(84)와 단둘이 생활해왔다. 경찰이 거주지를 확인한 결과, A씨 아버지도 숨져 있던 상태였다. 현장에선 A씨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아버지를 데려가서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A씨는 지난 10년간 치매와 심장병 등 각종 지병을 앓아온 아버지를 홀로 부양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가 아버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3월 같은 지역에선 공기업에 다니던 40대 남성이 치매를 앓던 어머니를 살해한 뒤 생을 마감했다.

두 사례 모두 가족 간병인이 어긋난 선택을 하면서 벌어진 비극이다.



# `간병=가족 몫' … 보이지 않는 굴레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노인실태조사 결과(2014)'에 따르면 신체기능 저하자 10명 중 8명 이상이 수발을 받고 있다. 이들 환자 중 가족으로부터 간병을 받는 비율은 91%에 달했다. 즉 가정 내에 환자가 생기면 병수발은 고스란히 가족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장기간 간병이 부양 의무자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데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 가족관계 악화,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불러오는 까닭이다.

중증 질환인 치매로 한정하면 심각성은 두드러진다. 대한치매학회가 환자 보호자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2018년), 간병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뒀다'는 응답 비율을 14%에 달했다. `(직장)근무시간을 단축했다'는 응답은 무려 33%나 됐다. 또 조사 대상자 71%는 간병 스트레스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 간병 범죄 예방 시스템 구축 시급

결혼연령 상승과 출산 기피 현상이 불러온 출산율 저하는 결국 고령화 사회를 초래했다. 변화 속도가 빠른 탓에 `간병 비극'을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마련이 요구된다.

민간경비학회보에 실린 `고령화 사회와 간병범죄(이철호 남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를 보면 국내에서 간병으로 인한 살인 사건이나 자살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자료는 없다. 다만 현시점에서도 △간병살인 △환자 살해 후 자살 △환자와 동반자살 △간병인 자살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연구진은 인구 고령화가 간병 범좌와 같은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킬 가능성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화 사회가 치매 등 질병에 따른 간병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시각이다.

연구진은 “고령화 사회는 기대수명 연장이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간병 살인 등 가족 간 범죄가 발생하는 부정적인 부분도 있다”며 “가족이 겪는 고통이 덜어지지 않는다면 향후 환자 급증과 함께 간병 범죄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간병 문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복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포괄 간호 서비스 확대, 장기요양보험 서비스 대상 범위 확대, 간병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방안 등을 통해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