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당당들 하십니다

충청논단

2018-09-30     권혁두 기자
권혁두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비인가정보 유출 논란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 여·야당이 총출동해 전면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대다수 국민은 혼란스럽다. 양측의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5단계 이상의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보안 사이트가 털렸다고 주장하지만, 심 의원 측은 승인된 아이디를 사용해 정상적으로 접근했다고 반박한다. 심 의원이 폭로한 업무추진비와 회의수당의 부적절한 집행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조목조목 해명하며 결백을 주장했다.

서로 고발을 주고받으면서 결국 검찰이 해결사로 나서게 됐다. 검찰이 밝힐 사안은 두 가지로 어려울 것도 없다. 심 의원이 부당한 방법으로 사이트에 접근해 자료를 내려받았느냐는 점과 심 의원 주장대로 청와대의 예산 집행이 부당했느냐는 점이다. 지금 청와대는 물론이고 기재부와 국회도 비상한 상황에 놓여 있다. 청와대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북한 비핵화 문제에 역대급 실업과 저성장 등 숱한 난제를 목전에 두고 있다. 여야도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새해예산안 처리 등 중요한 정기국회 일정을 앞두고 있다. 정쟁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 검찰로 공이 넘어간 만큼 논란을 더 이상 확대 재생산하는 정쟁은 이제 그쳤으면 좋겠다. 논란의 직접적 당사자들만 남고 여·야당은 링에서 내려가 국회 일정에 충실하는 것이 논란의 조기 종식에 득이 될 것이다.

이번 논란은 절차적 합법성과 국민의 알 권리 중 무엇이 먼저냐는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야권에서는 설령 심 의원이 자료를 취득하는 과정이 적절치 못했다 하더라도, 그 자료가 국민의 알 권리에 호응할 가치가 있다면 공개하는 것이 옳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예컨대 청와대의 부당한 예산 집행을 입증할 자료라면 유통절차의 법적 문제를 넘어 국민적 권리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견 옳은 주장이기도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국회에서 제기된다는 점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심 의원 측이 내려받은 자료는 총 37개 기관의 47만여 건에 달한다. 자료 제목만으로도 책 몇 권 분량이 될 정도의 방대한 규모다. 필요한 자료를 골라 내려받은 것이 아니라 자료함을 통째로 싹쓸이 한 인상이 짙다. 이렇게 닥치는 대로 자료를 빼낸 목적이 무엇일까. 속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야당의 주장처럼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국민의 알 권리에 집요하게 저항하는 대표적 집단이 국회이기 때문이다.

한 시민단체가 연초에 서울행정법원에 국회 특별활동비 사용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두 달 전 법원은 국회의원 특활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고 판결했지만 국회는 이를 거부하고 상급법원에 항소했다. 법원 판결까지 외면하며 국민의 알 권리에 제동을 걸려는 사람들이 불현듯 들고나온 `국민의 알 권리 사수'에서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청와대도 당당할 수만은 없다. 정부 예산집행지침에 따르면 휴일이나 밤 11시 이후에는 업무추진비를 쓸 수 없다. 청와대는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조직 특성을 들어 근무시간 이외의 업무 추진비 집행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더라도 집행내역에 완벽한 증빙자료를 달아 오해의 여지를 철저히 차단했어야 한다. 특수활동비와 달리 업무추진비는 사용처 증빙이 필수다. 청와대는 나름 해명했지만 여전히 석연찮은 부분이 적지않다. 청와대에 용도를 밝히지 않아도 될 특수활동비가 있음에도 업무추진비가 국가기밀로 취급되는 근거가 무엇인지도 묻고 싶다. 그 국가기밀급 자료들이 아마추어들에 의해 통째로 유출될 정도로 허술하게 관리돼온 경위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이 고발한 신창현 민주당 의원의 택지개발정보 공개 건이 이번 사태와 비교되며 벌어지는 `내로남불' 논란도 짚어볼 일이다.

적폐 청산은 청와대의 핵심 과제이다. 개혁은 추진 주체들의 엄중한 자기검열과 자기사찰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안한 얘기지만 야당에 책이 잡혀 끌려다니는 모습에선 절박한 개혁 의지가 감지되지 않는다. 이번 사달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