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유치원

수요단상

2018-09-11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서울 상도동의 무너진 유치원은 위태로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절실하고도 강렬한 메타포(metaphor)이다.

유치원은 아이들이 모두 귀가한 깊은 밤에 무너지면서 인명이 살상되는 당장의 파멸 대신 위험의 징조를 경고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민의 존엄한 생명을 얼마나 간절하게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라는 의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무너진 유치원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미래'를 포기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해주는 징후 중 하나다. 거기에는 토지자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그칠 줄 모르는 탐욕이 있고, 공사비 절감을 이유로 허겁지겁 서두르는 무책임과 안전 불감증이 있으며, 마치 정형화된 듯 공무원의 `민원 뭉개기'가 제대로 뒤엉켜 있다. 무너진 유치원은 이 땅에서 `안전'이 얼마나 무시되고 있으며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이고, 또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지우지 못하게 하는 절망의 상징이다.

유치원은 미래를 향하는 우리 사회의 희망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는 금쪽같은 자녀들이고 우리 모두의 후손들이 제대로 된 보육을 기대할 수 없고 오히려 생명을 위협받거나 학대와 인권 유린당하는 일이 멈추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미래'를 말할 수 있겠는가.

유치원이거나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어린이를 방치해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벌써 몇 년째 거듭되고 있으나, 여태껏 근절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 몰지각한 보육교사들이 어린이들에게 폭력과 인권 유린을 일삼는 일도 잊을 만하면 거듭 되풀이되고 있으나 근본적인 대책은 세워지지 않고 있다. 기껏 내놓는 대안이 안전벨이거나 CCTV를 통한 감시와 관찰 등 기계적 대응에 의존하고 있으나, 이 또한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거나 마음가짐을 다잡지 않는 이상 전혀 작동될 수 없다.

이렇게 불신과 불안이 팽배해 있는 마당에 성공적으로 자녀를 양육할 자신을 얼마나 가질 수 있으며, 그런 세상에서 출산율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무너진 유치원으로 인한 불안은 차치하더라도 그런 변수로 인한 유치원의 임시 휴원이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또 얼마나 부담을 주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챙겨야 하는 책임은 우리 사회의 공동에 있다.

사람과 미래에 대한 기성세대의 무한책임과 그런 책임의식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도록 보육교사의 자질과 대우를 개선하는 일은 문제 해결의 가장 근본적인 방향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교육과 부동산이 자본의 욕망과 신분상승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통로로 작용해 왔다. 그중 부동산의 경우 가진 돈이 없으면 포기할 수밖에 없으나, 그로 인해 생기는 부의 불균형과 불평등은 정부 정책에 가장 강력하게 불신하며 불만을 집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교육문제는 좋은 대학 진학의 출구를 통해 더 편하고,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으며, 더 높은 신분과 계급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창구로 여기는 것이 보편적인 한국 사회의 욕망으로 남아있다.

대학입시제도에 대한 정부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지지율 하락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의 단초가 되었고, 속수무책이다시피 한 부동산 폭등이 불신의 불에 기름을 부어버리는 요인이 되었음을 정부와 청와대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유은혜 교육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앞두고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서슬이 유난히 시퍼렇다. 게다가 임명 철회 청원이 요동을 치고 있는데, 그 속 내용이 참으로 딱하다. 학교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데 앞장섰고 비전문가라는 주장이 핵심인데,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민주시민으로 육성하는 교육의 근본적인 본질은 도대체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물론 극심한 경쟁력을 뚫고 어렵사리 교직에 진출한 대다수의 성실함과 (그들의 주장대로) 무혈입성한 뒤 동등한 자격을 손쉽게 얻는 특별대우와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봄과 사람 사이의 평등함에 대한 본질적 휴머니즘은 교육을 통해 세워져야 한다. 무너진 유치원은 본래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없다.